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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제이 Mar 16. 2019

1. 평균 이하의 삶을 살았던 학창시절,나는야  '쫄개

7일간 7일치 식량을 메고 250KM 중국 고비사막을 달리다. 


야 쫄개야!


이 말은 내가 학창시절 내내 들었던 나의 별명이다.

지금의 나는 도전가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가슴 뛰는 삶을 이야기를 하고있지만 예전의 나는 찌질이 중의 왕 찌질이였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뛰어놀기 좋아하고 수영,탁구, 바둑 등 이것저것 많이 배우는 것을 굉장히 즐기는 아이였다.


그러나 나는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 복싱과 바둑에 관심이 많았는데 가족들과 밥 먹는 도중 아버지께 복싱이나 바둑을 배우고 싶다 했더니 언성을 높이시면서 둘 다 안된다고 단칼에 잘라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우리 부모님뿐만 아니라 그 당시 모든 부모님들의 마인드는 나는 대학에 못 갔지만 자식들을 어떻게 해서든 대학을 보내는 것이 대세였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자식이 평범하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이후에 안정적인 삶을 살길 바라셨을 것이다.


그 이후 나는 하고 싶은 목표가 없어졌고 게임에 푹 빠지게 되었는데 가상현실에서는 내가 게임을 잘하니까 주위에서 인정받기 시작했고 나는 더욱 게임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친구들과 소통도 단절되었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친구들에게 말을 제대로 못하는 내성적이고 우유부단한 성격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왜소한 체구에 느린 행동까지 더하여 친구들이 나를 자연스레 만만하게 보았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쫄개’라는 별명이 붙었다. 


쫄다구처럼 가사롭다는 뜻이었다. 주위 친구들이 나를 무시하며 쫄개라고 불러도 스스로 화조차 낼 줄 모르고 바보같이 웃고 넘어갈 정도로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그리고는 집에 가서 교복도 벗지 않고 밤새 게임만 했다. 그러니 학교에서는 공부에 집중을 안 하고 틈만 나면 졸았고 고등학교 3학년 여름에 모의고사 성적은 34명 중 32 등이었다. 그조차 나머지 2명은 축구부였다.


부모님께서는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며 공부는 못할 수 있지만 성격이라도 좋아야 할 텐데  하시며 걱정하셨고 나는 부모님의 마음도 모른 채 3학년 여름 때까지 게임에만 빠져있었다. 현실에서는 인정해주지 않는 찌질이지만 게임에서는 다들 나를 멋있고 대단하다며 우러러보았기 때문에 나는 차라리 가상세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던 고등학교 3학년 여름,  우연히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찌질했던 쫄개가 어떻게 20대에 100가지 꿈 리스트를 이룬 가슴 뛰는 삶을 살게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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