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나의 이야기
"아들~"
오늘도 거실에 누워있는 아들을 불러본다. 내 목소리를 아는 건지, 어디서 소리가 나서 쳐다보는 건지 모르겠지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귀여워 죽겠다.
장모님은 "딸이 태어났으면 딸~~ 이럴 거야?"라고 하신다. 항상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내가 표현하는 방법이 별로이신가 보다. 내가 딸만 둘인 집에 장가가서 그런가.
아들과의 첫 만남은 안타깝게도 기대 이하였다.
초음파 사진으로 본 아들의 모습은 내 뱃속에 있지 않아서 그런지 실감 나지 않았다.
옆에서 펄쩍 뛰는 아내에게 맞장구까지는 치겠지만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감흥은 없었다.
나쁜 남자 코스프레이기보다는 그냥 진심이 그랬다. 그땐 아들인지 몰랐지만.
어쩌면 아내도 실망이 있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실망했다. 아내는 딸을 원했다. 그게 원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지만 아내는 땀냄새에 쩔어 집으로 들어오는 아들의 모습은 상상조차 하기 싫어했다. 아들이면 힘이 장사라서 딸보다 키우기 두배는 힘들다는 주변 육아 선배의 말 한마디가 아내의 뇌리에 꼭 박혀있었다. 또 사춘기 아들은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도 걱정이고, 성교육은 어떻게 시키고...
걱정 인형을 하나 선물해줘야 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10개월이 지나고 아들이 태어났다.
한 시간에 걸쳐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로 걸어가는 길에 아내에게 전화 왔을 때 덜컥했다. 아니나 다를까 양수가 터졌다는 말에 발걸음을 돌렸다. 택시에서 회사에 전화하고, 부모님한테 전화하고, 장인어른한테 전화하고 나니 지하철을 타고 출근해서 사무실에 다 달았을 때 양수가 터졌다는 게 참 신기했다. 역시 인생이란..
튼튼한 아내는 한마디 명언을 하고 건강하게 출산했다.
"둘.째.는.없.어."
출산 직전에 단호하게 말하는 걸 듣고 나니 진짜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퇴원할 때 처음 들은 아들의 음성이 현실이었다 "아"라고 한마디 했다. 하마터면 어머니와 장모님 앞에서 눈물을 보일뻔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곧 절망이 찾아왔다.
조리원에서는 오후 7시부터 2시간 동안은 엄마가 아이를 돌보도록 하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가 아이를 받고서 할 수 있는 건 잠에서 깨어나지 않길 기도하는 거였다. 하지만 내 아들은, 아니면 신은 그렇게 너그럽지 않았다. 20분도 채 되지 않아 정말 서럽게 우는 아이는 멘붕이었고, 나에게 무력감을 느끼게 한 일생일대의 사건 중에 하나였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저 잠에서 깨서 우는 거였다. 나참 단순하기도 하지.
오늘로 177일이 된 아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다.
아들이 가장 잘 배운 것은 웃는 방법이다. 해맑게 웃는 방법을 엄마가 잘 가르쳤나 보다.
눈을 마주치고 내가 웃으면 같이 따라 웃는 모습은 천사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다.
멀리서 아들을 부르면 먼저 웃어준 다음에 자기 할 일을 하는 모습이라니 내 아들이지만 배려심이 남다르다.
요즘 아들은
얼굴을 가까이 대면 손을 뻗어 "이게 뭐지?" 만져보고, 내 손가락을 꼭 잡고 어떻게든 입에 가져가려고 힘을 쓰고, 자기 발을 보고 신기해하고,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동화책을 읽어주면 책을 보고 있다.
가끔 나는 아들 얼굴을 부여잡고 아무도 몰래 '사랑해'라고 말해준다.
엄마도 몰래 아들한테만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까.
실은 나중에 크면 못할 것 같은 말이라서 지금 더 많이 하고 싶다.
사랑하는 아들, 천사 같은 아들, 우리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