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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호 Dec 20. 2022

아포리즘 9

2022.11.21~2022.12.20

말할 것도 없이 국수주의와 자국 혐오 너머에서 조국을 사랑하면서 비판하고 또 세계시민의식을 가질 수 있다.(2022.11.21)


아무래도 K-컬처의 폭발력은 서구 문화와 비서구 문화의 대립을 가로지른다는 데 있다는 게 맞는 말인 듯하다.(2022.11.22)


외래인 혐오 발언은 근대 국가의 폭력적 기원과 국가 간의 정치경제적 연관에 대한 무지 혹은 부인이다.(2022.11.23)


낙인찍는 습관은 증상적이다. 그는 그 낙인이 없으면 텅 빈 현실의 불안을 견딜 수 없는 깜냥인 것이다.(2022.11.23)


자신을 사랑하라고들 한다. 허나 나르시시즘과 자기혐오는 공모한다. 그보다 자기 안의 타자성을 사랑하자!(2022.11.24)


잊지 말아야 할 바, 대저 사람들은 누군가가 착하면 이용하고 잘되면 시기한다. 진짜배기가 드문 것이다.(2022.11.27)


군중은 자신의 불안을 숨길 가십거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 대상이 되는 호구나 우상을 찾거나 만들어낸다.(2022.11.28)


두말할 필요도 없이 어떤 담화 주제의 주제화 자체에서도 필연적으로 어떤 선별의 정치를 식별할 수 있다.(2022.12.1)


얼핏 정의로워 보이면서 남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 오늘날 악질적 PC주의의 나르시시즘을 자극하는 유혹이다.(2022.12.3)


오늘날 파시즘과 악질적 PC주의는 서로에게 명분을 주면서 공생한다. 문제는 둘 모두가 공유하는 아상我相이다.(2022.12.3)


억견과 달리 서구적인 개인 간의 무관심은 대저 이기심이 아니라 오랜 훈육의 결과로서의 어떤 적극적인 예의다.(2022.12.6)


우리를 현실과 괴리된 어떤 이미지로 몰고가는 자들은 진실한 관계보다 그 조작의 어떤 이득에 더 관심이 있다.(2022.12.7)


출판계 스타 철학자 니체는 대중의 파괴적 나르시시즘의 먹이로 소비되는 듯하다―그는 대중을 경멸했지만 말이다.(2022.12.7)


어느 영역이든 그 적폐를 분쇄하는 것은 인정사정없는 어떤 원초적 개방성, 어떤 폭력적인 열림이다.(2022.12.8)


퇴임을 앞둔 한 철학과 교수가 이런 말을 했었다. "진리는 도자기공의 의식되지 않는 손길 같은 것 아닐까?"(2022.12.9)


군중은 결함 있는 자를 주변에 두고 심지어 리더로 만들면서 그 결함을 자신을 가릴 연막으로 사용하기도 한다.(2022.12.12)


한국의 미증유의 초저출산은 경제 문제인 동시에 이데올로기적 압력의 문제다. 낡은 좌파들이 이 점을 은폐한다.(2022.12.13)


"멍청하고 과격한 정치충"에 애써 주목하면서 급진성 자체를 냉소하는 경향은 변혁을 막는 중대한 기만이다.(2022.12.14)


오늘날 PC주의와 정체성 정치는 지식인과 교양층의 아편이다.(2022.12.15)


악인보다 위선자가 더 역겨운 건 그의 기만이 선량한 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보상을 가로채기 때문일 것이다.(2022.12.17)


착한 사람의 한계는 그가 따르는 질서가 그 질서 내에선 비가시적인 자에겐 폭력일 수 있단 걸 모르는 것이다.(2022.12.18)


상대방에게 질투가 날 때 차마 빈정대지는 못하는 사람들은 대신 상황에 맞지 않는 "칭찬"을 할 때가 있다.(2022.12.19)


막역한 사이임을 내세우면서 다른 사람 앞에서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 자는 사실은 유해한 인연일 따름이다.(2022.12.19)


곡해의 책임은 곡해한 자에게 있는 것이지 그 대상에게 있는 게 아니다.(2022.12.20)


억견을 뒤흔드는 진리, 법과 관습을 넘어서는 정의, 유일무이한 아름다움. 이것들이 사유를 인도할 가치들이다.(20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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