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호 Aug 15. 2024

아포리즘 25

2024.7.25~2024.8.11

오늘날의 속견과는 정반대로, 공감에 매달리고 자기 상상을 함부로 투사해버리는 것이 사회성이 부족한 것이다.(2024.7.25)


한 대상에 대해 양립 불가능한 환상을 가지는 건 그 대상의 실제를 회피해서다.(2024.7.27)


악플러는 늘 소수지만 분명 그 영향이 있다. 그리고 악플러가 부끄러움 없이 특별히 더 용인되는 곳이 있다.(2024.7.27)


오늘날 증오는 인민의 아편이다.(2024.7.28)


놀랄 것도 없는 바, 근래의 검열들은 주로 권위주의적인 기관보다는 증오에 중독된 군중으로부터 이뤄진다.(2024.7.28)


오늘날의 군중의 증오 중독은 그들이 그 향락을 즐기는 데서 기인한다. 합리적인 논구 따위는 별 소용이 없다.(2024.7.28)


모든 일상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미시 파시즘에 비해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 대항하는 건 간단해 보일 지경이다.(2024.7.28)


모든 것이 쾌락 지향적인 시대에 불쾌감과 혼동되는 숭고의 예술은 예술가의 진정성의 한 증거가 아닌가.(2024.7.30)


반동적인 소수자 정치가 횡행한다고 해서 진정으로 전위적인 소수자 정치마저 팽개치는 건 잘못이다.(2024.7.30)


한국과 일본이 난민과 이민을 대량으로 받지 않는 건 국제적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2024.8.1)


오늘날의 야만은 쏟아지는 정보가 즉물적 충동을 만족시키면서 형성되는 무반성적 좀비 무리에서 주로 비롯한다.(2024.8.4)


숨 막히는 성적 억압이 엄존하는 곳뿐 아니라 성적 전시가 과장돼 부추겨지는 곳도 주체의 성적 자유를 훼손한다.(2024.8.4)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군중의 샤덴프로이데, 증오, 르상티망은 타락한 지배 계급과의 동일시와 결부돼 있다.(2024.8.5)


주사파의 거의 완전한 퇴락 이후 한국의 자본주의적 파시즘의 증오 투사 기표는 북한에서 중국과 조선족이 됐다.(2024.8.7)


투명하게 정립된 규칙은 자유와 대립하지 않으며, 그 반대이다. 반면 비공식적 불문율은 가스라이팅을 촉성한다.(2024.8.8)


포퓰리즘과 엘리티시즘은 발본적 민주주의에 쫄아서 적대적인 체 공모하는 것이다.(2024.8.8)


인생의 좌표를 설정하는 데는 도래할 죽음의 불가피성이 고려돼야 할 것이다.(2024.8.11)



작가의 이전글 아포리즘 2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