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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지호 Dec 05. 2023

[습작] 붉은색

첫 붉은색을 누군가의 낙하로 기억한다. 혼자 있을 일이 많던 어린아이에게는 질문에 대답해줄만한 어른이 없었다. 그 상황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자연스럽게 달력을 넘기면서 알게 되었다. 다만 그 스스로의 낙하가 어떤 연유였는지는 아직도 알 방법이 없다. 서러움이었는지 막막함이었는지 그다지 알고 싶지 않은 그 끝에서의 감정이 내게는 다가오지 않기를 가끔 바랄 뿐이다.


빨간색이야 도처에 널려있지만 붉은색은 그렇지 않다. 가장 큰 생명력의 색깔은 각자에게 담겨있다. 늘 그렇듯이 소중한 것은 남에게 보이지 않고 말아버리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붉은색을 목도해야만 하는 시간이 몇몇 있었다. 학부 실습 시간에 쥐를 해부하는 시간이었다. 그 실험이 왜 중요하고 필수불가결한지는 머릿속으로야 알고 있었지만 나는 어째 다른 생명의 붉음을 바라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자세한 것은 시간의 흐름에 바래졌으나 실험이 끝나고 나서 이유없는 허기를 느꼈던 것은 기억한다. 배가 고파 많이 먹었다. 사실 그 짧은 식사 시간에 내 미래에 대한 많은 것들이 정해졌지만 아무에게도 그걸 말할 수는 없었다. 


짙고 두터운 감정들 또한 남에게 보이지 않고 말아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어째 그러한 무거운 감정들도 붉음에 가깝지는 않은가 혼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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