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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지호 May 13. 2024

편지 쪼가리

참으로 애매한 것이다. 버리지 않기에는 가지고 있을 의미가 없는 것 같고, 버리기에는 무언가 기분이 이상해져버리는 것이다. 기실 편지라는 것은 이제는 영 구하기도 힘든 편지지라는 종이 쪼가리 위에 몇 자 써 올려져 있는 것 뿐인데. 어째 오랜만에 마주하고 나면 가끔은 숨을 쉬기도 불편할 정도로 아랫목의 기억에 사로잡혀버리고 만다.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구든 어떤 내용이 써져 있든 상관 없이 편지는 그 시간을 잘라내어 담아둔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에 대해 읽는 것을 몇 번을 반복하고 나면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금세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알고 마냥 하늘이 원망스러워진다. 그리고 그때와 지금을 연결시키고 싶은 마음에 '잘 지내?'라는 짧은 말에 그 모든 것을 구겨 넣고 메세지를 보내려다가 바로 추락한다.


더 이상 안부를 묻는 것이 서로간에 결례인 경우도 있고. 서로의 삶을 잊은지 오래기에 막상 다시 이어 붙이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필요한 때도 있다. 친구와 싸우고 토라져도 다음날 놀이터 앞에서면 다시 어색하게 친해질 수 있었던 어린 날과는 달라져버린 것이다. 나는 서로간의 긴 공백을 채워낼 만큼의 그런 여력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다. 아니 노력하기조차 두려워진 것이다.


편지는 점차 귀해졌다. 특히 편지봉투 위에 우표가 올려져 있는 것은 더욱 그렇다. 사실은 그런 것이다. 나는 이제 당신의 주소를 물어볼 엄두도 그다지 나지 않고, 그 이유를 묻는 것에 '편지를 보내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할 기력도 없다. 편지 쓸 곳이 없는데 어찌 우표와 편지지와 편지봉투와 연필이 필요하겠나. 그렇게 생각하지만서도 그런 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받아 놓은 편지 쪼가리를 버리지 못하는 것과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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