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습작

질량 보존의 법칙

by 석지호

깨끔발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괜히 그러고 싶다. 반지하 언저리에서 삶을 시작하고 나니 언제부턴가 창문이며 문을 가려놓는 것이 당연해졌다. 거적때기를 주워다가 펴바른 것은 아니고, 그래 블라인드라는 말을 쓰면 되겠다. 어째서인지 외국어는 비슷한 단어라도 슬픔이 무뎌지게 한다. 저 멀리 사는 사람들의 언어라서 그럴까. 하기야 같은 말을 뱉는 사람들도 멀리 살면 서로의 아픔을 알기에는 너무도 더디다.


어쨌거나 블라인드를 치고 사는 것은 꽤나 집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속옷 바람으로 활개를 칠수도 있는 것이고 뜬금없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거울에 연습해도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한 어느 정도의 자유를 얻게 되면서 아쉽게 된 점은 비가 오는 것을 소리로 먼저 듣는다는 것이다. 보고 나서 듣는 것은, 듣고 나서 보는 것과는 다르다. 나는 사랑하는 것을 보고 듣고 싶어하지, 듣고 보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비는 내가 사랑하는 것이고. 보는 것과 듣는 것의 순서가 뭐가 그리 중요하냐는 볼멘 물음에는 나는 딱히 할말이 없어져버리고 만다.


숨을 크게 들이쉰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것이다. 빗방울은 세멘 바닥에 부딪혀 텁텁한 소리를 낸다. 한동안 마음이 소란했는데 덕분에 고요해졌다. 마음 안팎의 어수선함은 보존된다. 시끄러운 소리가 마음 속에서 나면 바깥 세상은 별 볼일 없어진다. 빗방울이 나 대신 소리를 질러주면 마음 안쪽은 부리나케 조용해진다. 질량이 보존되는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어쩌면 어수선함은 질량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답답할때면 심장 한켠에 큰 돌덩이를 올려놓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런 무게감을 느껴본 적도 오래되었다고 생각하려던 차에 요즈음은 그런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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