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에 지쳤다
안녕하세요, [발칸 반도로의 도피] 저자 석지호입니다.
발칸 반도로 떠났던 시간은 여행과 방황 사이 그 어딘가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글로 남길 생각도 없었고, 심지어 브런치를 다시 시작할 생각도 없었어요. 저는 여행에서 돌아와 미국 유학 준비중에 있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짐을 버리던 중에 산더미같이 모아둔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하나하나 읽다 보니 웬걸, 서른 전에 책을 하나 내겠다는 약속을 한 적이 있더라구요. 일신상의 사정도 있었는데, 어쨌든 그러다보니 반은 취해 글을 적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운이 좋게도 몇몇 분들이 늘 재밌게 읽어주셨고 가끔은 댓글로도 좋은 기운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을 떠날 때, 몇 군데 출판사에 연락을 돌렸었고 그 중 '하모니북'이라는 1인 출판사의 도움을 받아 정식 출간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식 출간 전, 텀블벅을 통해 먼저 판매를 하려고 계획중에 있습니다. 해당 브런치 글들은 아쉽지만 추후 삭제 예정입니다.
혹시라도 제 추억에 함께 해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을만큼 좋겠습니다.
해당 링크는 아래에 첨부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석지호 배상
https://tumblbug.com/balkantravel
폴란드 바르샤바 (1/2)
한국어에 지쳤다. 문득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나는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누구의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그 말을 듣고 자동으로 이해하는 것은 정말 최악이었다. 긴 군 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내던져진 스물 후반에게는 그 어떤 말들도 무겁고 날카롭게만 느껴졌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 만으로는 부족했다. 한국어는 어디에 가나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단절이 필요했다. 다시 말해서, 비행기 티켓이 필요했다.
한국어가 없는 곳이 필요했다. 그 어떤 말을 듣더라도 그저 의미를 알 수 없는 억양들의 나열이어야만 했다. 겨울방학을 맞아 많은 청춘들이 유럽과 미국의 자리를 채울 것이 분명했다. 프랑스의 에펠탑이나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언저리에서 행복하게 “김치!”를 외치는 것을 듣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직장을 다니는 평범하게 위대한 사람들은 짧은 시간을 쪼개 일본과 동남아에 갈 것이 뻔했다. 나는 호텔 로비에서 서로를 지나치며 “한국 사람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혹시”로 시작하는 문장들을 듣고 싶지 않았다.
불가리아라는 나라가 눈에 들어온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불가리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어렸을 때 좋아하던 불가리스라는 이름의 요구르트뿐이었다. 불가리아를 인터넷에 검색하고 나서 바로 편도 티켓을 구매했다. 불가리아어가 공용어라는 한 문장 때문이었다. 주변에서 불가리아에 여행을 간다는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한국어에 지친 입과 귀를 씻기 위한 최고의 환경이었다. 다음주가 바로 출국일이었다. 하필 비행기를 타기 전에 약속이 잡혀 있었다. 어떠한 의무감과 외로움으로 모임에 나갔다. 자연스럽게 내 입은 다양한 한국어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대화가 귓바퀴를 타고 맴돌다가 귓불에 의미 없이 매달렸다.
“나 다음 주에 불가리아에 갈 거야.” 나는 지친 와중에 뜬금없이 선언했다.
“거긴 대체 왜?” 새로운 대화 주제를 찾아낸 친구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더는 대화하고 싶지 않아서.”
낡은 12월의 새벽에도 지하철에는 사람이 많았다. 벌써부터 지친 사람들은 꾸벅이며 졸다가 본인들을 필요로 하는 역에서 내렸다. 나는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역에서 꽤 주눅이 들었다. 현대 문명은 아직 나를 굳이 필요로 하지 않았다. 구구단 숙제를 끝내지 못해 방과 후에 홀로 교실에 남은 어린아이의 기분을 느꼈다. 심지어 나는 어린아이도 아니었다. 어느새 꿈보다 키가 커지고, 마음이 몸보다 작아진 어른이 지하철 창가에 비쳤다.
쓸모없는 어른은 공항에 홀로 내려 폴란드로 가는 비행기를 찾았다. 직행 티켓이 아예 없다는 것도 꽤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아무렴 누가 굳이 돈과 시간을 내서 불가리아라는 나라에 가겠냐는 가설이 어느 정도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폴란드에 도착해서 하루정도 시간을 보내고 다시 비행기를 타 불가리아에 도착할 계획이었다. 비행기는 인천을 떠나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바르샤바는 하얗고 뿌옇기만 했다. 눈을 비벼봐도 그랬다. 눈이 살갑지 않게 내리고 있었다.
버스를 타기 위해 티켓을 사야 했다. 티켓을 살 수 있는 기계는 단 하나 외롭게 서있었다. 화면에는 낯선 언어들이 가득했다. 나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언어들을 보고서야 끝내 안도했다. 굳이 영어로 바꾸지 않고 느낌과 감각에 의존해서 티켓을 구매했다. 몇 초면 해결되었을 일을 10분 동안 온갖 고민을 하며 성공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티켓 하나를 구매한 것만으로 보통 느낄 수 없었던 승리감을 느꼈다. 버스는 정보와 다르게 중간에서 멈췄다. 사람들이 모두 내리자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버스 기사는 작은 동양인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려 애썼다. 노력은 가끔 사람을 배신하는 법이다.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내려 호스텔을 향해 걸어갔다.
“오늘 축제라도 있어?”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며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르샤바 온 거리를 행복한 커플들과 단란한 가족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홀로 다니는 사람은 아무래도 나 혼자가 분명했다. 알 수 없는 언어로 된 노래들과 알 수 있는 조명들이 곳곳에 있었다.
“12월 말이잖아.” 호스텔 직원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폴란드에서는 12월 말에 축제를 해?” 내가 말했다.
“한국엔 크리스마스가 없어? 크리스마스잖아!”
나는 크리스마스라는 짧은 단어에 갑자기 외로움을 느꼈다. 갑자기 지독한 현실감이 몰려왔다. 나는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싶었다. 외로움은 짐 정리를 끝내고 저녁을 먹으러 거리에 나섰을 때 구체화됐다. 모든 식당들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스스로 혼자 식사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이런 기간에 저 행복 속에서 밥을 먹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우유를 샀다. 호스텔에 돌아오는 길에 크리스마스 마켓과 트리를 발견했다. 행복과 따뜻함을 팔고 있는 마켓을 구경하며 나는 조금 더 작아졌다. 작은 동양인은 교회보다 큰 트리를 보며 샌드위치를 씹었다.
“괜히 왔다. 거지 같네.”
그것이 내가 타지에서 내뱉은 최초의 한국어였다. 다행히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샌드위치는 더럽게 맛이 없었고 우유는 설사하기 딱 좋았다.
호스텔 앞에서 방황했다. 침대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온갖 외로움과 슬픔과 낯섦을 쉽게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잠이나 자는 것이었다. 잠은 모든 걱정의 종착역이자 무덤이다.
가끔 외계인의 입장에서 인간을 연구하는 상상을 한다. 외계인이 본 모든 인간은 하루의 삼분지 일 정도를 눈을 감고 누워 낭비한다. 정말 무방비한 채로 그저 숨만 쉬는 상태로 존재한다. 그 무가치함은 인간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회복으로 이어진다. 아마도 문학 박사 학위가 있는 외계인은 이 현상을 잠을 잔다고 표현할 것이다. 그리고 이학 박사 학위가 있는 외계인은 잠을 자는 것을 인간이라는 개체의 삶과 죽음의 중간 정도를 유지함 정도로 정의하지 않을까 싶다. 결과적으로 모든 인간은 일생의 삼분지 일 정도를 자면서 보낸다. 나라는 인간은 아직 스스로를 회복하고 싶지 않았다.
모두 짝을 지어 다니는 거리를 혼자 걷는 것은 생경한 기분이었다. 곳곳에서 끓인 와인 냄새가 났고 산타 옷을 입은 사람이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공간을 웃음으로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워서 그나마 사람들이 없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배고픔이 해결되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눈 밟는 소리를 느끼면서 정처 없이 걸었다. 여러 언어들이 내 주변을 감싸고 있었지만 단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쓸데없는 정보들이 머릿속을 채우지 않는 것에 감사했다.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 상상하며 걷다가 이상한 건물 하나를 발견했다. 엄청 크고 못생긴 건물이었다. 건물을 보며 작고 못생긴 것과 크고 못생긴 것 중에 어떤 것이 나은가 하는 멍청한 고민을 했다. 나도 모르게 외모만 보고 건물을 판단하고 있었다. 조금 미안해져서 저 건물이 뭐 하는 건물인지라도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메리 크리스마스!” 산타에게 다가가 말했다. 산타복을 입는 것이 봉사활동을 하는 건지 돈을 받는 건지 그냥 재미로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산타는 마주 보며 웃더니 내게도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쳐 주었다.
“저 큰 건물은 뭐예요?” 내가 말했다. 차마 못생겼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문화 과학 궁전이야! 크고 못생겼지?” 산타는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을 대신해주고 다시 아이들과 사진을 찍었다.
나는 폴란드인의 작명 센스에 압도되었다. 문화와 과학을 함께 엮는 것도 충분히 이상한데 그들은 그 속에 궁전이라는 단어를 욱여넣었다. 파인애플 피자 위에 민트 초코를 올린 기분이었다. 아마도 그 이름은 민트 파인애플 피자일 것이었다. 민트 파인애플 피자를 생각하다가 싸구려 샌드위치라도 먹어서 다행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문화 과학 궁전을 바라보았다. 크고 못생기고 이름마저 이상했다.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에 맥도날드를 발견했다. 맥도날드 정도면 혼자 식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있었다. 내일 아침은 햄버거를 먹자고 다짐하며 침대에 누워 꿈 없는 잠을 청했다.
오랜만에 경험하는 다인실 도미토리는 재앙이었다. 귀를 거슬리는 작은 절규 소리에 잠을 깼다. 적막한 새벽에 같은 공간에서 누군가가 울고 있다는 것은 조금 현실적이지 않았다. 괜찮냐고 물어봐야 할지 아니면 조용히 해 달라고 해야 할지 고민했다. 잠이 깬 것에 조금 화가 나긴 했지만 나는 늘 누군가의 슬픔을 보았을 때 말문이 막히는 사람이었다. 가끔은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만 나는 위로와 공감에 영 재능이 없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생각하다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공간 속에 말을 뱉었다.
“괜찮아?” 누구인지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물었다.
“아니 안 괜찮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훌쩍이며 말했다. 2층 침대에서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서 커튼을 잠시 열고 그녀를 바라봤다.
“괜찮아?” 멍청하게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미안해. 남자친구가 헤어지자고 전화했어.” 그녀는 슬픔에 온몸을 맡긴 채로 문을 열고 나갔다.
나가서 위로를 해 줘야 하는 건지 그건 영 오지랖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짧지 않은 고민 끝에 다시 잠을 청했다. 타인의 아픔을 안기에는 스스로가 너무 피곤했다. 조금은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게 그저 귀찮았던 그 밤은 그녀에게는 심장 언저리에 생채기가 생긴 그런 아픈 밤이었을 것이다. 눈을 뜨고 어둠 속을 바라봤다. 지금 이 순간 지구 어딘가의 어떤 사람은 다시는 잊을 수 없는 행복을 맛봤을 것이다. 또 다른 대륙의 어떤 사람은 이 시간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슬픔을 겪었을 것이다. 같은 날짜가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은 참담한 일이었다. 늘 그렇듯이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내게 의미 있는 몇몇 날들을 떠올렸다. 아마 그날들은 당신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것 같았다.
잠을 자고 일어나 짐을 챙겨서 체크아웃을 했다. 그녀가 괜찮아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 괜찮지 않았을 것이었다. 어제 계획했던 대로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를 시켰다. 폴란드 맥도날드엔 특이하게도 순무 버거를 팔고 있었다. 크림치즈 속에 야채와 순무가 들어 있었다. 알싸하고 씁쓸하고 매운맛이 났다. 당신과 이별하고 시간이 지난 후에 당신을 추억했을 때의 기분과 비슷한 맛이었다. 식사를 정리하고 비행기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