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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플로브디프 (1)(2)

집과 골목과 고양이

by 석지호

정식 출간 예정입니다 !

https://tumblbug.com/balkan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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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잠에서 깨니 플로브디프였다. 기차 좌석에 앉은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여정은 기억나지 않았다. 중간 과정은 기억나지 않지만 시작과 끝은 있었다. 내 비루한 이력서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었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날과 끝낸 날은 적혀 있었지만 그 사이에 있는 어떠한 것도 사회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다. 꿈에 대해 말하며 새벽에 가장 값싼 사발면을 입에 욱여넣던 것이나 의미 없는 사랑을 의미 있게 꾸며 귀에 속삭이는 것이나 실패한 사람의 옷깃에 절어 있는 술냄새를 맡았던 것은 전혀 이 사회가 굴러가는 데에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나는 내 학창 시절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당연히 좋지 못한 이력서였다.


플로브디프는 오래된 도시였다. 인포메이션 센터를 지키고 있는 굳센 인상의 아주머니 말로는 그랬다. 그녀는 이곳이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중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집들을 둘러볼 수 있고 그 사람들이 걷던 골목들을 걸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몇 푼의 돈을 내고 중세 언저리에 살았던 사람들의 집을 구경했다. 대문을 열면 몇 가지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보통은 집주인을 그려낸 그림들이 중심을 차지했다. 나는 영정을 바라보며 다소곳하게 부러워했다. 나는 아직 집이 있다는 기분을 평생 동안 느껴보지 못했다. 늘 여기저기를 옮겨 다녔다. 지금으로부터 몇 백 년 전의 사람이 자신의 보금자리를 완성하고 느꼈을 안도감을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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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올라가 침실을 구경했다. 이 작은 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태어나고 살아나가고 스러져갔는지 알 수 없었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타인의 사적인 공간을 구경하는 것은 압도적인 먹먹함을 가지고 온다. 서로를 향했던 은밀한 밀어와 높은 교성은 이제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가끔은 이 공간을 환희와 웃음소리가 가득 채웠을 것이다. 또 어떤 시간에는 비참함과 울먹임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공간에 덩그러니 침대만 남아 있는 것이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응접실에는 고풍스럽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탁자가 있었다. 누군가 차를 마시고 술을 마시고 우유를 마셨을 공간에는 더 이상 아무런 인간의 향기가 남아있지 않았다. 내 방에 있는 이십 년 넘은 책상이 문득 생각났다. 나는 중세 시대 사람도 아니고 유명한 사람도 될 가능성이 없었으니 내가 아끼는 하얀 책상은 어째 누군가에게 오래 관찰되기에는 벌써부터 글러먹은 것이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그 책상은 보관되기는커녕 대형 폐기물 스티커나 붙여져서 누군가가 땀을 뻘뻘 흘리며 분리수거장까지 옮겨야 할 터였다. 멀리 떨어진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고 서류를 작성하고 계산을 하며 다 지쳐버린 공무원에게 스티커를 받아야 할 누군가에게 미안해졌다. 나는 그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얼마나 귀찮은지 퍽 잘 알고 있다.


창가를 괜히 몇 번 쓰다듬었다. 때로는 죽어 있는 것을 매만지는 것이 살아 있는 것을 쓰다듬는 것보다 더 큰 위로를 준다. 모든 죽어 있는 것을 생각하다가 배가 고프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온갖 죽은 것의 슬픔은 가끔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사라지고는 한다. 사실 그래야만 살아 있는 것이 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나처럼 온갖 것에 슬퍼하는 사람들은 집을 가지기도 전에 이미 죄다 졸도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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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집은 돈을 내고 구경해야 하는 곳이었지만 골목은 언제나 늘 그렇듯 아무 의무도 필요하지 않았다. 들어가봄직 한 여러 예쁜 집들이 많았지만 굳이 많은 시간을 길을 걷는 데에 썼다. 일을 마무리하러 가야 하는 직장인의 초조함으로 길을 걸었다. 결혼을 앞둔 새댁의 부끄러움으로 길을 걸었다. 저 앞에 무엇이 있는지 모를 어린아이의 두근거림으로 길을 걸었다. 같은 길이지만 모두 다른 길이었다. 쓸데없이 상상력이 좋다면 그저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되는 법이었다.


작은 관광지다 보니 길을 걸으며 마주쳤던 사람들을 계속 다시 마주쳤다. 처음에는 그저 서로 눈만 마주치고 말았지만 그 이후로는 안녕이라는 인사를 건넸다. 두 번째 지나쳤을 때는 웃으면서 인사했다. 세 번째 만난다면 운명이라며 밥이라도 한 끼 하자고 하려고 했지만 세 번째 만나는 우연은 없었다. 조금 지쳐서 성벽 근처 길에 앉아서 쉬었다.


고양이들이 몇 마리 돌아다녀 함께 놀았다. 한국의 고양이들은 손길을 주면 가까이 오기는커녕 하악질이나 하고 츄르를 줘봐야 다 먹고 나면 도망치고는 했다. 불가리아 고양이들은 자본주의를 덜 배운 것이 분명했다.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멍하니 보고 있으면 조용히 다가와 곁에 앉았다. 고양이는 혼잣말하기 딱 좋은 생물이다. 강아지에게는 영 할 수 없는 것이다. 강아지에게 혼잣말을 하면 뭔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나를 꼭 안아줄 것만 같다. 그것은 영 부담스럽다. 고양이에게 혼잣말을 했다. 고양이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앞발을 핥더니 몸을 말고 낮잠을 잤다. 나는 그런 것이 필요했다.


허기가 진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계획 없는 여행을 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더 이상 어디에 갈지 고민할 필요도 없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생각할 필요도 없다. 선택지는 밥을 먹는다는 것 하나만 남고 지워진다. 나아가야 할 선택지가 줄어든다는 것만으로도 복잡한 머리가 자유로워졌다. 역설적인 일이다. 자유롭게 살겠다고 발버둥 치던 나는 오히려 자유도가 떨어지는 삶에 큰 매력을 느끼고 만다.


버거를 판다고 그려져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버거는 분명히 버거였다. 토끼 고기 버거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하긴 확실히 햄버거라고 써져 있진 않았으니까 이 잘못은 오롯이 나의 것이 되었다. 초등학교 때 반에서 키웠던 토끼의 눈망울은 배고픔 앞에서 잊혀졌다. 사실 토끼의 이름조차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얀색 털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흰둥이 아니면 구름이 정도였을 것 같다. 토끼 고기 버거와 레모네이드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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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팠다. 하루 종일 걸어 다녀서 그런지 끔찍하게 배가 고파졌다. 배고픔 앞에선 모든 것이 평등하다. 죽을 것만 같은 슬픔도 죽어도 여한이 없는 행복도 배고파지면 말짱 도루묵이다. 살다 보면 평생 밥도 입에 댈 수 없을 정도로 격한 감정이 찾아온다고들 하는데 나는 아직 그런 것은 찾지 못했다. 하루쯤 그렇더라도 그다음 날에는 무언가를 입에 넣고 씹어 위 속으로 넘겨야 했다. 그럴 때면 낙타나 곰 같은 것이 부러웠다. 살고자 밥을 먹는 것보다는 감정에 취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 더 멋지지 않은가. 토끼 고기 버거는 그럭저럭 먹을 만한 것이었다. 익숙한 맛도 아니었고 아주 특이한 맛도 아니었지만 배고픔을 지우는 것에는 확실히 효과적이었다.


배고픔이 사라지자마자 온갖 고민들이 다시 마음속에 들어왔다. 대합실에서 저녁 정도에나 기차가 있다고 했으니 세 시간 정도를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근처에 고대 로마 극장이 있다고 해서 느리게 발걸음을 옮겼다. 받아 든 티켓에는 필리포폴리스 원형 극장이라고 써져 있었다. 분명히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는데 기억은 잘 나지 않았다. 교양 수업 때 지나치며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축구 게임을 하다가 본 것 같기도 했다. 하여튼 플로브디프는 과거에 필리포폴리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것 같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구경했을 극장에는 그야말로 아무도 없었다. 그 먼 옛날에도 고양이는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사람 하나 없는 곳에 고양이 두 마리 정도만 햇볕을 쬐며 눈을 감고 잠을 자고 있었다. 사람이 멸종되어도 고양이는 남아있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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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없었지만 극장은 아름다웠다. 가운데 무대를 하얀 대리석으로 된 돌계단들이 반원형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계단은 서로 폭이 꽤 넓었다. 어린아이들은 꽤나 난처했을 것이다. 엄마 손을 잡고서도 올라가기에 조금은 벅찬 높이였다. 하지만 엄마 품에 안겨 가기엔 계단이 너무도 많았다. 하긴 혹시라도 안겨 있는 것을 본다면 동네 친구들이 한 두 달쯤은 놀려댔을 것이다. 어른은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가 여러 시점으로 무대를 바라봤다. 어디가 비싼 자리일지 궁금해서 위치를 계속 옮겨 다녔다. 답은 간단했다. 고양이가 자고 있는 곳이 바람도 잘 불고 햇볕도 따스하니 딱 좋았다.


가운데에 있는 무대에 서면 압박감이 들었다. 돌계단은 그만큼 많고 높았다. 사람들이 저 계단에 걸터앉아 나를 지켜보는 상상을 했다. 끔찍한 일이었지만 재밌을 것 같았다. 나는 단 둘이 있으면 말이 적어지고 서너 명이 있을 때엔 꽤 대화를 주도하고 여러 명이 모일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반대로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야 할 때는 또 말이 많아진다. 소모임에서 만났던 옛 연인이 내가 그렇게 조용한 줄 몰랐다며 떠나갔던 것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궁금한 것이 없어 조용히 있었던 나는 헤어지고 나서야 궁금한 것이 많아졌었다. 아무래도 피곤한 성격이다.



혼자 강승윤의 ‘비가 온다’를 한 곡 부르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비가 오지도 않는데 빗노래를 불러서였을까. 표를 팔아야 하는 매표소는 닫혀 있었다. 뭐라고 써져 있기는 했는데 당연히 읽을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 다녀올게요’이길 바랐지만 한 시간 동안 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아닌 것 같았다. 그런 변비는 있을 수가 없다. 누가 봐도 굉장히 난처하고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역 가운데에 서있었다. 적당한 간격으로 머리를 긁고 한숨을 쉬었다. 어떤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서로 대화는 통하지 않았지만 아주머니는 나를 끌고 갔고 그곳에서 표를 살 수 있었다. 역시 세상은 불쌍해 보이는 바보를 홀로 내버려 둘 만큼 삭막하지 않다. 이것은 어떠한 내 믿음과도 같은 것이었고 불가리아 사람들은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블라고다랴!” 아주머니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외쳤다.


아주머니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아주머니를 보내고 대합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노숙자인 것 같은 사람이 와서 호주머니를 가리키며 돈을 달라고 했다. 옆에 있는 아저씨가 노숙자에게 저리 가라고 호통쳤고 내게는 미안하다며 저런 사람에게는 절대 돈을 주지 말라고 했다. 여전히 말은 통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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