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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소피아 (5)

세 번째 한국인

by 석지호

정식 출간 예정입니다 !

https://tumblbug.com/balkantravel


새벽에 잠을 깼다. 가끔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편지를 쓰려고 굳이 새벽에 일어난 적이 있다. 누군가를 좋아하기 참 어려워하는 사람에게 인연은 큰 의무감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네 시 정도의 온도와 습도는 누군가를 사랑하기에는 최고의 상태이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아마도 그 편지의 주인은 한 명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편지지를 다 채우고 나서 생기는 작은 죄책감은 늘 편지 봉투에 넣어 함께 봉했다. 편지라는 것은 묘한 것이라 글쓴이는 더 이상 읽을 수가 없고 읽은 이에게 오롯이 운명이 맡겨져 버리는 것이다. 가끔은 내가 쓴 편지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하고는 한다. 새벽에 쓸 필요가 없었던 편지가 몇 장이 있다. 그것만은 살아있기를 바라지만 그것도 모를 일이다.


새벽에 깬 이유는 자의가 아니라 타의였다. ‘+1’로 시작하는 번호에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전화를 끄고 잠이나 더 자고 싶었지만 대체 미국에서 오는 전화는 어떤 스팸일지 궁금해서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좋은 아침! 석지호가 맞나요?” 놀랍게도 한국말이 아니라 영어가 들렸다.


“네 맞아요. 아침은 아니고 새벽이에요. 혹시 누구세요?” 내가 물었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예요. 당신의 지원서가 통과되어서 1월 말에 인터뷰 초대를 하려고 전화했어요. 한국은 지금 9 시인줄 알았는데 정말 미안해요!”


그야말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였다.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통화 음질이 잘 좋지 않다고 혹시 메일로 내용을 보내줄 수 있냐는 변명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실제로 뭐라고 하는지 잘 안 들리기도 했지만 어째 얼굴도 모르는 중년 남성이 연발하는 미안하다는 말은 듣기에 어색한 것이다. ‘여자들의 시장’에서 샀던 귤을 까먹으면서 무슨 상황인지 생각했다.


전역을 하면서 박사 유학을 가려고 몇 군데 대학원에 원서를 넣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당연히 인터뷰는 먼 이야기겠거니 하며 발칸 반도에 발을 디딘 것이었는데 사람 일은 참 알 수가 없었다. 집에 가서 인터뷰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화가 났다. 감히 그 따위 것이 내 여행을 망칠 수는 없었다. 분명 지금까지는 한국어가 싫어 도망친 도피에 불과하고 큰 이유나 원하는 것 따윈 없는 여정이었지만 갑자기 이 여행은 내 자유와 사유를 위한 중요한 것처럼 느껴졌다. 해가 뜨면 한국행 비행기 대신 다른 나라로 가는 버스표를 사야겠다고 결심하고 다시 잠을 잤다.



새벽은 확실히 인간에게 위험한 것이다. 늦게 일어나 메일을 다시 확인했다. 이것은 ‘그 따위 것’이 아니라 내 인생에 몇 없는 기회였다. 하지만 남자로 태어나 한 입으로 두 말을 할 수는 없으니 당장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인터뷰 3일 전에 한국에 도착하는 비행기 티켓을 샀다. 낭만의 마지노선이었다. 도착하고 짐을 풀고 바로 미국으로 향하면 늦지는 않을 것이었다.


다른 나라로 떠나야겠다는 결심은 호스텔 로비에서 천장을 보고 누워있을 때 한 번 더 확실해졌다. 한국인 발룬티어와 인사를 했다. 잠시 후에 재훈과 인사를 했다. 재훈 옆에는 누가 봐도 한국인이 확실한 사람이 한 명 서 있었다. 허탈하게 웃으면서 안녕하냐는 인사를 건넸다. 한국어에서 도망치고자 도착한 나라에서 한국인만 연달아 세 명을 만났다. 이쯤 되면 운명이었다. 아직 한식이 고픈 게 분명한 재훈은 저녁에 삼겹살을 구워 먹자는 제안을 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훈과 ‘형님’은 심지어 같은 방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저녁 약속을 잡고 국경을 넘을 버스를 알아보러 갔다.


트램을 타지 않고 굳이 오래 걸었다. 나는 불가리아를 많은 길들 과 골목으로 기억할 것 같았다. 발길을 딛는 모든 곳에는 그라피티가 있었다. 페인트로 벽에 낙서를 하는 것이야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불가리아에서는 조금 달랐다. 아름다운 상상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나는 분전함에 그려진 초콜릿 파티를 하는 순록이나 지하도에 그려진 불가리아산 사자를 보며 걸음을 멈췄다. 이름도 어려워 외우기도 힘든 누군가의 미술관 특별전을 보는 것보다 재밌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누군가는 돈을 위한 것도 아니고 명예를 위한 것도 아닌 어떠한 목적으로 거리에 그림을 그렸다. 그 무형의 쓸데없음을 보고 적당한 아름다움을 느꼈다. 불가리아의 길과 골목에는 그러한 쓸데없는 아름다움이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짧은 길도 오래 걸었다.



조금은 익숙해진 키릴 문자를 읽으며 마케도니아행 버스를 예약했다. 마케도니아에 대해 아는 것은 아까 켰던 구글 맵에서 그나마 불가리아랑 가깝다는 것 밖에는 없었다. 마케도니아 여행을 검색해 봐도 한국어로 된 후기는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려운 것을 보니 흡족했다. 이번에는 드디어 한국어에서 도망치는 여행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저녁에는 재훈과 ‘형님’과 삼겹살에 라면을 먹었다. 발룬티어는 흔쾌히 김치를 내주었다.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먹고 싶어 하는 모습이 보이면 주려고 고기를 넉넉하게 사 왔지만 그 고기는 다 입으로 들어갔다. 고기며 김치 냄새가 날 것 같아서 조금은 부끄러웠지만 홍조는 소주와 맥주 사이에서 쏙 들어갔다. 그 어떠한 무신경함과 무기력함이 매력적인 호스텔이었다. ‘형님’에게도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불가리아에는 왜 오셨어요?”


‘형님’은 내 예측과는 다르게 꽤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재훈과 ‘형님’은 여행했던 곳들에 대해 공유하며 어떤 곳이 가장 좋았다는 여행자스러운 이야기를 계속했다. 비자 문제 때문에 며칠을 있어야 한다거나 가격이 어떻고 바이크를 타기 좋다는 얘기가 이어졌다. 어디는 꼭 가야 하고 아직 유명하지 않은 어디는 놀기에 최고라는 것 같았다. 세상 많은 곳을 보고 왔던 이 사람들에게 불가리아는 어떻게 기억될까 궁금했다. 내가 보았던 길들 과 골목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은 보잘것없어 조용히 있었다. 결국 ’형님‘의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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