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강의실에서 혼자 시계를 보고 있었다. 시곗바늘은 초마다 미묘하게 조금씩 다른 각도로 움직였다. 멍하니 시계를 노려보다가 손가락을 시곗바늘 위에 먹먹히 눌러 놓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초침은 너무 바쁘게 돌아가고 분침도 여유가 없어 보여 아무래도 내 손가락을 얹을 만한 곳은 시침 정도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검지는 조금 힘이 달리겠지만 엄지 정도면 시침을 멈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아무래도 두툼한 엄지라면 시간을 멈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을 멈춘다고 딱히 하고 싶은 일은 없었다. 그냥 이 공간의 야릇한 적막을 나만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묘한 소유욕이 들었다.
의자 위에 서서 시곗바늘을 꾹 누르고 있는 내 모습을 그려보다가 영 비현실적이라 조금 웃었다. 대신 상식과 시선과 부끄러움과 뭐 그런 지난한 것들과 타협하면서 시침을 멈추어 놓는 것 말고 부러뜨리는 것은 어느 정도 현실감이 있지 않나 고민을 했다.
엄지와 검지를 함께 쓴다면 몇 초 안에 시침을 떼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또각이라든가 챙이라든가 파삭이라든가 뭐 그런 소리가 날 것이 분명했다. 그 시침 조각을 손안에 숨긴다면 아무도 시침 없는 시계의 범인을 모르지 않을까 싶었다. 초침과 분침만 또각또각 돌아가는 시계를 보는 것은 무슨 기분일지 상상하다가 문이 덜컹 열렸다.
시곗바늘은 멈추지도 않고 부러지지도 않고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고 내 어린 기대는 역시 현실 앞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