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를 괜히 몇 번 쓰다듬었다. 때로는 죽어 있는 것을 매만지는 것이 살아 있는 것을 쓰다듬는 것보다 더 큰 위로를 준다. 모든 죽어 있는 것을 생각하다가 인간은 관계로만 이루어진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어머니의 아들이다. 동료의 친구이다. 교수의 제자이다. 당신의 연인이었다. 그 모든 관계를 씨실로 삼아 나날들의 날실을 엮어 천으로 짜낸 것이 나였다. 당신이 떠난 후로 실오라기 하나가 섧게 끊어졌다. 당신의 연인은 죽었다. 나는 어느 정도 구겨졌다.
자화상을 그려낸다면 물감 하나 정도 부족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의 색으로 캔버스를 채워 나가도 한 색깔은 없을 터였다. 보라색 물감이 아닐까 했다. 당신과의 시간은 보라색에 가까웠다. 추억을 그리려다가 문득 그림에 보라색 하나 없으면 어떠냐는 생각을 했다. 잊어가는 것은 그렇게 무엇인가와 타협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래야만 다른 색을 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