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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지호 Jun 07. 2023

계란말이

보고 싶어요

저는 소주가 싫어요. 편의점 아르바이트한테는 변명할 수가 없거든요. 소주를 편의점 계산대에 올려두면 그걸로 끝이에요. 대낮에 혼자 먹을 게 아니라 저녁에 오랜만에 친구가 올 거라 준비해 두는 거라고 너스레를 떨 수가 없잖아요.


그냥 올려두면 아르바이트는 바코드를 띡 찍고는 얼마라고 해요. 카드를 꼽으면 계산이 됐다고 하고요. 눈에 익은 아르바이트는 감사하다는 말도 없이 핸드폰을 다시 보고요. 하긴 고마워할 이유는 없어요. 아니면 대낮부터 소주를 사가는 사람한테 인사하기엔 좀 그럴지도 몰라요.


저는 보통 안주도 없이 혼자 먹거든요. 친구가 어딨겠어요. 안주를 살 돈이 없는 건 아니고요. 그냥 귀찮아서요. 요리는 안 한지가 꽤 됐어요. 전자레인지도 귀찮아요. 포장지를 벗겨서 전자레인지 앞에서 서성이면 피곤해져요. 전자파 때문일까요?


코로나 이후로 음식이 죄다 비싸졌어요. 술보다 먹을 게 비싸요. 하긴 술은 건설적인 인간 활동과 하등 관련이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오히려 술을 마셔요. 이건 반항도 아니고 아집도 아니고 뭘까요. 그냥 병신이지 뭐겠어요.


소주를 입에 부으면 옛날 생각을 해요. 요즘 생각은 하지 않아요. 일을 하기 싫은 건 아닌데요. 누가 괴롭히지도 않아요. 그냥 좀 지루할 뿐이에요. 일에는 상상할 여지가 하나도 없어요. 조금 불행하게 자랄 때는 꿈 없는 삶을 살기를 원했는데요. 막상 재미없는 어른이 되고 나니 좀 그래요.


제일 재밌고 슬픈 옛날 생각은 고백해 버리고 끝나버린 짝사랑인데요. 첫 연애도 아니고 그것만 반복되어 재생하는 걸 보면 신기하긴 해요. 사실 목소리도 잘 기억나지 않아요. 예전엔 연락하려고 만나려고 온갖 변명을 만들었는데요. 이제는 구차한 이유조차 없어요.


슬픔이 나는 건요. 만나지 못한다는 게 아니고요. 만날 시도조차 안 한다는 거예요. 분명히 어릴 적 사랑엔 그런 게 있었어요. 내 감정이 사라질 때까지 매달리는 거요. 알아요 민폐라는 거. 그런데 민폐라는 걸 알고 있는 게 화가 나요. 쿨해지는 건 늙은 것 같아요.


옛날 생각을 하면 옛날 노래를 듣는데요. 이게 퍽 늙은이 같아서 울적해져요. 저는 어렸을 때 옛날 노래를 들으면 뭐 SG워너비 같은  발라드나 들을 줄 알았는데요. 아까부터 반복되어 나오는 가수는 2NE1이거든요.


시간이 되시면 ‘그리워해요’나 ‘UGLY'를 한번 들어보세요. 가사가 슬퍼요. 사실 전 온갖 쓸데없는 것들에 슬퍼하는데요. 졸업할 때쯤에는 ’ 고래사냥‘ 응원가도 슬펐어요.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 다 돌아앉았다잖아요.


계란말이가 먹고 싶네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계란말인데요. 맛있잖아요. 가끔 옛날에요. 학교 커뮤니티에 익명 게시판이 있거든요. 가끔 우울 도진 청춘들이 나타나거든요. 그럼 괜히 화가 나서 댓글로 계란말이를 만들라고 했어요. 맛있는 거 먹으면 좋아지잖아요.


기억나는 한 명이 있는데요. 계란이 없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당장 나가서 사 오라고 했어요. 꼬박꼬박 말은 잘 듣더라고요. 계란 까라면 까고 저으라면 젓고. 기름은 있다고 한 것 같아요. 하여튼 계란말이를 한 시간인가 걸려서 만들었거든요. 걔 첫 요리래요. 먹고 울었다는데 나는 이해하지 못했어요. 너무 맛있어서 울었나. 얼굴도 모르고 나이도 몰라요. 이 사진 하나만 캡처해 뒀어요.


저도 가끔 울적할 땐 계란말이를 했는데요. 아주 가끔은 계란 두 판을 꼬박 다 쓰기도 했어요. 하여튼 그러면 좀 나아졌는데요. 이제는 계란말이를 만들고 싶지조차 않아요. 그냥 그렇다고요. 내일은 출근을 해야 하거든요. 뭐 막상 일을 하면 별다른 생각은 없어요. 재미는 없지만요. 어쨌건 간에 공휴일에 마시는 소주는 별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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