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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 Feb 16. 2019

Forgetmenot.com

어떤 잊혀진 공간에 대한, 

메신저를 방불케 하는 지나간 대화의 흔적을 읽습니다. 당신이 발견했다던 온통 빨간 칵테일 바의 사진을 봅니다. 내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우리는 그곳에 함께 가지 않았습니다. 내가 황급히 찍어 올렸던 프로스펙트 포인트의 노을 사진을 봅니다. 괴상한 표정으로 와사비맛 젤라또를 먹는 사진과 잉글리쉬 베이의 모래에 놓인 나무 벤치의 사진을 봅니다. 벤치 뒤편으로 초점이 맞지 않은 소녀들이 달리고 있습니다. 이 사진을 당신은 좋아했습니다. 우리는 나중에 그곳을 함께 달리지 않았습니다. 조조영화를 보러 가다가 찍은 사진과 공사를 시작하기 전의 광화문에서 찍은 사진 파일 사이에서 오디오가 녹음되지 않은 영상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언젠가 가본 적이 있는 풍경을 아직 낡지 않은 신발로 걷는 여자를 봅니다. 여자는 개구진 걸음걸이로 카메라에 다가와 렌즈가 앙코르 와트라도 된다는 듯이 무언가를 말하고는 이내 멀어집니다. 나는 몇 번이고 그 영상을 돌려보았습니다. 


조개무덤을 생각합니다. 고고학자들은 문명의 초입에 만들어졌다는 조개껍질 더미의 화석을 통해 인류의 자취를 설명합니다. 취하고 버려진 조개의 흔적은 죽음의 집적으로써 생명의 역사를 증거 하는 부담스러운 사명을 떠안고 멀뚱히 서있습니다. 반복되는 영상은 사각거리는 조개껍질을 사방에 흩뿌립니다. 발을 베이지 않기 위해서, 나는 애써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옮기지 않습니다.


처음 이 공간을 만들 무렵, 나는 호스팅 서비스 계약과 도메인 소유권의 기간을 정하고 그에 따른 돈을 지불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정도의 기간이었는지, 얼마를 지불했는지, 관리자 모드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무엇이었는지 같은 것은 이미 잊어버렸습니다. 다만 이 곳이 더 이상 늙지 않은 채 곧 죽음을 맞이할 것을 압니다. 하여 나는 지금 지켜지지 않은 축복들과 남겨지지 않은 유언을 두고 관 속에 누워있는 어린아이를 마주하는 느낌입니다. 이제와 갑자기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덮어두었던 이야기가 더 이상은 억울하지 않음을 기념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 기념일에 초대한다는 것은 지금의 당신에게도 그때의 당신에게도 아니 될 말입니다. 다만 이 공간을 무대로 펼쳐져 있는 우리의 무용담을 새삼 부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참 용감한 젊음이었습니다. 당신은 두려워하지 않았고 나는 아직 아프지 않았습니다. 실패한 신화란 왼쪽 가슴에 오롯한 훈장 하나만큼의 무게만을 드리울 뿐이지만 말입니다.


늙지 않은 아이를 마주하고도 한참을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오랜만, 이라는 길이도 시간도 가늠할 수 없는 무심한 말로 건네는 인사가 망설여집니다. 뇌세포 어딘가에서 표류하던 주소를 따라 이곳으로 오기까지는 우습게도 채 몇 초가 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욱 가엾은 것은 지금 이 곳에 당신이 와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서로의 접속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곳은 끝내 누구도 매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개무덤이 증거 하는 것은 조개무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오늘의 나는 어떤 것이 있었다가 사라진 자리와 아무것도 없는 자리는 동의어가 아님을 알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하릴없이 부서져 사라짐을 향해갑니다만, 이곳은 여전히 묵묵합니다. 그에 안도감이 드는 것은 오랜만이라는 말만큼이나 모호한 물음이 됩니다. 부서지는 와중의 저는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하겠지요. 차라리 모처럼 적어본 주소에서 사이트를 찾지 못했다는 통보를 마주했다면, 나는 아마도 당황을 했을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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