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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때문에 이번년도는 망했네요.

그게 정말 저 때문인가요?

by 지훈쌤TV

학기 초가 되면, 작년에 배운 내용을 확인하는 ‘기초학력검사’가 이루어집니다.


결과가 기준점수보다 낮으면, 1년 동안 세 차례 ‘기초학력 향상도 검사’를 치러야 합니다.


C군은 모든 과목에서 기준점수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이었습니다.

여러 과목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국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읽기가 막히면 이해가 어렵고, 이해가 흔들리면 모든 배움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작년 담임선생님께 부탁드려 C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C군의 가장 큰 특징은, 선생님이 퇴근할 때까지 교실에 남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교 후에 집에 가라고 해도 가지 않았고, 꼭 자리를 비워야 하는 순간이 오면 복도나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학기 초 상담에서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왜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는 거니?”

“집에 아무도 없어서 심심해요.”


자정이 되어서야 부모님이 돌아오시기 때문에, 일찍 집에 가면 그만큼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오랜시간 남아있기를 택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C군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방과 후 시간에 조금씩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자료를 만들어 지도했습니다.

처음에는 귀찮아하던 C군은 점점 마음의 문을 열었고, 서툴지만 스스로 공부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12시가 넘어, C군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선생님, C가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전화를 받지 않아서 걱정돼요.”


그날 퇴근할 때 함께 교실을 나섰던 기억이 떠올라 그렇게 말씀드리고, 곧바로 C군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늦은 시간인데 왜 아직 집에 안 들어갔니?”

“선생님, 엄마는 제 말을 전혀 들어주지 않아요.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공원에서 그네 타고 있어요.”


저는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은 늦은 시간이야. 어머니께 연락드리고 집에 들어가렴. 부모님은 너를 사랑하신단다. 네가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면 분명 들어주실 거야.”


통화를 마친 뒤, 어머니께 상황을 설명드렸습니다.

그렇게 모든 일이 잘 마무리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어머니께서 전화를 걸어오셨습니다.

“선생님, 대체 애한테 무슨 바람을 넣으신 거예요?”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이제 제 말을 듣질 않아요. 작년엔 이렇지 않았는데, 선생님 때문에 올해는 망했네요.”


그동안 수많은 학부모님을 만나왔지만, 이렇게 무례한 통화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노력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기분이었고, 마음속에 밀려드는 감정을 억누르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어머니, 저는 C군에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방과 후 매일 지도하며, 공부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돕고자 했어요. 기분이 좋지 않으실 수 있겠지만, 저는 C군의 선생님입니다.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됩니다.”


그날 이후, 어머니와 개인적인 통화를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수업 시간마다 C군을 마주할 때마다 그 대화가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1년이 흘러, C군은 제 곁을 떠났습니다.

가끔 학교에서 마주칠 때면 그는 언제나 먼저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 공손한 인사 한마디가, 그동안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조용히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그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이의 기초학력보다 먼저 세워야 할 것은 ‘신뢰’라는 것을요.

배움은 시험지 위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마음이 닿는 자리에서, 천천히 싹을 틔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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