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어떤 말도 견딜 수 있다고 믿었다.
처음 발령받았던 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고학년을 맡아왔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여학생들 사이의 ‘파벌’ 문제입니다.
이런 일은 대체로 단톡방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없는 단톡방’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학생들은 배신당한 것처럼 분노합니다.
그 방 안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을지 상상할수록 마음은 더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학기 초에는 꼭 이야기합니다.
“어른이 없는 단톡방은 만들지 말자.”
하지만 그 약속은 쉽게 깨집니다.
방 하나를 만드는 건 몇 초면 끝나고, 선생님이 그걸 알게 되는 건 언제나 ‘사건 이후’니까요.
그해 봄, 수학여행 조편성 과정에서 일이 터졌습니다.
버스 배치, 숙소 인원, 활동 조까지 정해야 할 게 많았고 그 과정이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단단히 말했죠.
“협박이나 강요가 있다면, 모든 조를 제가 다시 섞을 겁니다.”
그런데 며칠 뒤 어느 저녁, C양의 아버님께서 문자를 보내오셨습니다.
단톡방 대화 캡처 사진이었습니다.
“너만 양보하면 다 편해. 왜 고집을 부려? 너 때문에 다 불행해지잖아.”
욕설이 섞인 장문의 대화내용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아버님은 “이건 좀 심한 것 같다”며 저에게 연락을 주셨고, 저는 C양과 여러 차례 상담을 했습니다.
C양은 많은 고민 끝에 울먹이며 “저는 그냥 양보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무사히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 교실의 공기는 미묘하게 바뀌었습니다.
친하던 친구들이 멀어지고, 새로운 관계들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종례 후 교실에 남아 있던 아이들의 표정에서 이상한 기류가 느껴졌습니다.
“무슨 일 있니?”
제 물음에 K군이 말없이 휴대폰을 내밀었습니다.
휴대폰에는 단톡방의 대화내역을 캡처 사진이 있었습니다.
“왜 나한테 XX 하는지 모르겠다. 담임 진짜 미친 거 아니냐?”
그 문장을 보는 순간, 하늘이 노래졌습니다.
손끝에 힘이 풀려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떤 말이든 견딜 수 있을 거라 믿었죠.
하지만 막상 ‘직접 본’ 말의 힘은 달랐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그 이미지를 여러 번 다시 보았습니다.
보면 볼수록, 상상이 커졌습니다.
‘이 학생은 나를 그렇게 보고 있었구나.’
소름이 돋고, 자꾸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며칠 후, P양의 어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머니는 이 일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하셨지만, 정작 “선생님 마음은 괜찮으세요?”같은 말은 끝내 꺼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마음의 상처를 꾹 눌러 담고 다시 교실로 들어섰습니다.
담임 선생님이니까, 학년이 끝날 때까지 그 학생을 매일 마주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괜찮아, 난 선생님이니까.”
“학생은 실수할 수 있는 존재니까.”
그 말을 수없이 되뇌며, 조금씩 일상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그날의 기억은 잊히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아이들 앞에서 완벽한 척을 해야 할 때가 많을 뿐입니다.
그래도 바라는 게 있다면, 조금은 따뜻한 시선으로 선생님을 바라봐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