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그저 막막했습니다
현재 저는 5학년 담임을 맡고 있습니다.
5학년 2학기 사회에서는 고조선부터 6·25 전쟁까지의 역사를 배웁니다.
예전에는 1년 동안 배우던 내용을 한 학기 안에 다루게 되면서, 역사를 가르치는 일이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고조선의 건국에서 삼국의 전성기, 삼국 통일까지 빠르게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학생들은 시대의 흐름을 잡기 어렵습니다.
교사로서도 어디에서 깊이 다루고, 어디에서 넘어가야 할지 늘 고민됩니다.
‘태정태세문단세’로 익숙한 조선 초기는 건국과 세종대왕의 업적까지만 간단히 배우고, ‘예성연중임명선’으로 넘어가면 곧바로 임진왜란을 다루게 됩니다.
이어지는 ‘광인효현숙경영’에서는 인조와 병자호란을 배우고 나면 곧 영조와 정조로 넘어가게 되지요.
오늘은 영조와 정조에 대한 수업을 마쳤습니다.
이제 세도정치와 흥선대원군, 그리고 고종을 거쳐 일제강점기로 이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역사 수업을 하며 유난히 마음이 어려웠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신규 교사 시절, 담임을 맡은 반에 일본인 어머니를 둔 다문화 학생이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차시를 가르치던 날, 저는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으로 조선인의 코와 귀를 베어갔고, 지금도 일본 교토에는 ‘귀 무덤’이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건 너무 심했어요.”
“일본은 왜 그런 짓을 한 거예요?”
아이들의 분노 섞인 반응 속에서, 저는 조용히 앉아 있는 L학생을 바라보며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이후 단원에서는 더 참혹한 전쟁의 역사와 일제의 만행을 다루어야 했기에, 수업을 준비할수록 그 학생이 느낄 감정이 떠올라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교육과정에 포함된 내용이고, 아이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설명을 이어갈 때마다 그 학생의 표정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일이라 말하기엔, 여전히 역사 왜곡이 반복되고 있고, 위안부 등 아픈 문제에 대한 사과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도 있기에 더욱 조심스러웠습니다.
그 시기의 수업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고, 돌이켜보면 서툴렀던 제 말과 태도가 그 학생에게 상처로 남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장면이 문득 떠오릅니다.
이후로는 비슷한 상황을 맞이한 적은 없지만, 해마다 다문화 학생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시 그런 고민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가 온다면, 그 학생의 마음을 조금 더 세심히 살피며 수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