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결재를 안 해주셨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전자결재는 허상일 뿐이라고요.
시스템은 분명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졌을 텐데, 여전히 사람의 눈치를 봐야만 결재가 되는 세상입니다.
'결재를 올리기 전에 직접 찾아와 설명해야 예의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화면 속 결재선보다 복도 끝의 문을 여는 일이 더 중요해진 거죠.
공개수업 지도안을 들고 교무실 문을 두드리면 반응도 제각각입니다.
“두고 가요. 검토하고 연락하겠습니다.”
“(바로 사인을 해주시며) 고생이 많아요. 수업 잘 하세요.”
“교과서랑 지도서도 안 챙겨오고, 요즘 선생님들을 이해할 수가 없네요.”
그래서 요즘은 어떤 스타일의 분이냐를 미리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해졌습니다.
결국 구두로 한 번, 전자로 또 한 번.
전자결재는 한 번이면 되는데, 현실은 늘 두 번입니다.
업무만 그런 게 아닙니다.
복무는 더 어렵습니다.
어느 날, 담이 와서 겨우 수업을 마치고, 병조퇴를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결재가 되지 않았고, 쪽지가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아픈가? 오늘 전체 회의도 있는데.”
몸은 이미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그 말 한 줄이 마음까지 더 아프게 하더군요.
결국 몸이 정말 좋지 않다고, 병원에 가지 않으면 힘들 것 같다고 이야기하자, 그제야 결재가 났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으로 향하는 길, 문득 예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매일 혼자 차를 몰고 목포에서 광주까지 오갔습니다.
광주에 대설주의보 예보가 내려진 날, 교감선생님께 쪽지로 사정을 전하고 조퇴를 상신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결재는 나지 않았고, 결국 교무실로 내려가 다시 한 번 직접 말씀드렸습니다.
그제야 교감선생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시더니 잠시 후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제 눈엔 눈이 안 보이는데요?”
그 한마디에 순간 숨이 막혔습니다.
하지만 꾹 참으며, 대설주의보 예보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퇴근길에 사고가 날 수도 있어서 가족들이 많이 걱정한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설명드렸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교감선생님은 헛기침을 하시며 말씀하시더군요.
“다음부터는 구구절절 말 안 해도 바로 해줄 테니, 그냥 결재가 안 됐다고만 하세요.”
그날 이후 복무로 갈등이 생기진 않았지만, 그때의 당혹감은 오래 남았습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시스템은 훨씬 편리해졌지만, 결재의 마지막은 여전히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업무든 복무든, 정당한 이유와 절차가 있어도 그 결재가 통과되느냐는 여전히 누군가의 기분과 판단에 좌우되곤 합니다.
그저 바랄 뿐입니다.
학교가 말 한마디나 표정 하나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도 되는, 조금 더 따뜻하고 상식적인 곳이 되기를요.
오늘도 전국의 교무실 어딘가에서 결재 문제로 마음 고생하는 선생님들이, 조금은 덜 외롭고 덜 아팠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