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graduation Life
박사 논문 쓸 때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었다. 졸업만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지. 그렇게 노래를 불렀는데 6월이 된 지금 이제 자리를 잡고 내 시간을 갖게 됐다.
졸업식을 맞아 부모님과 동생이 와서 약 12일간 함께 가족 여행을 하고, 3년 동안 살았던 애리조나에서의 학생 삶을 졸업하듯이 짐을 꾸리고 오레곤 포틀랜드(Portland, Oregon)에 왔다. 이번 여름에 지낼 오레곤에 짐을 풀고 정리하고, 주말에 3시간 30여 분만 운전하면 갈 수 있는 시애틀에 여행을 갔다가 다시 짐을 싸서 몬테나 (Billings, Montana)에 있는 친구 결혼식에 다녀왔더니 5월 한 달이 갔다.
졸업을 하고 한 3-4주간은 번아웃이 와서 랩탑을 볼 수가 없었다. 정말 필요한 여행 관련 검색만 하고 전혀 보지 않았던 컴퓨터. 그런 시간이 너무 필요했다. 졸업을 하고 나서는 마감일에 치이듯이 사는 삶이 없어졌다는 것이 큰 변화이다.
자리를 잡고 한숨을 돌리면서 처음 살아보는 포틀랜드 근방을 탐색하고 알아가보고 있다. "Green state"답게 나무, 수풀, 꽃이 많다. 미국에서 보기 드문 아기자기한 풍경이다. 처음에 동네를 운전하면서, 와,,, 정말 너무 예쁘다, 감탄사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지금까지 가봤던 다른 주들과 다르게 수풀이나 꽃 종류도 여러 가지이고 집 디자인도 특색 있다. 장미의 주답게 여기저기 다양한 장미와 수국이 피어있다.
포틀랜드 다운타운에는 오래된 카페나 특색 있는 레스토랑이 많다. 바다도 가까워서 (운전하면 1시간 30분 정도) 애리조나와 다르게 해산물 레스토랑도 많다. 포틀랜드 다운타운 중간에 흐르는 윌라멧 리버 (The Willamette River)와 12개의 다리가 있는 도시가 참 귀엽게 생겼다. 한강이 흐르는 서울 같다. 서울이 그립지만, 지금은 이곳이 마음이 편하다.
오레곤에서 2주간 살아보니 개인적으로 미국에서 살고 싶은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비가 오긴 하지만 시애틀만큼 많이 오지 않고 시애틀보다는 따뜻하다. 도시이긴 하지만 캘리포니아 LA(엘에이)나 SF(샌프란시스코)처럼 너무 크고 위험하지 않고 아기자기하게 곳곳에 갈 곳들이 많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아마도 애리조나만큼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여름을 피해 있다는 것이다. 박사 생활동안 얼마나 바라왔던 일인가. (No more summer in AZ!!!)
논문을 쓰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ClassPass 앱을 깔아서 첫 무료체험 기간 동안 근처 가보고 싶은 동네에서 그룹 운동을 해본다. 오레곤에서 가장 부촌 (The most affulent town)인 Lake Oswego에는 다른 곳보다 요가, 필라테스, 바 (Barre) 스튜디오가 많았다. 부촌일수록 스튜디오에 운동하는 사람도 많고 다들 늘씬하다. 근처에 있는 주변 동네인 Beaverton (나이키 본사 있는 동네), Tigard (오레곤에서 아시아인이 가장 많은 동네, H마트도 있는 곳), Tulatin 등을 가서 운동을 하면 동네마다 사람들이 참 다르다. 사람, 동네, 마트구경은 새로운 곳에 왔을 때 할 수 있는 재밌는 일이다.
이곳에서 여름을 보내면서 앞으로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고민해보고 있다. 우선 2주간 웨스트코스트에 있어보니, 미드웨스트 인디애나에 갈 엄두가 살짝 나지 않는다. 그만큼 이곳이 참 매력 있다. 컴퓨터를 켜고 다시 소소하게 일을 시작했다. 6월에 있는 학회 발표할 페이퍼와 발표자료를 만들어서 지도교수님한테 전달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실리콘밸리에 있는 5개 기업들을 대상으로 1시간 정도의 박사 논문과 관련된 강의 제안이 와서 자료를 만들고 준비한다. 그동안 졸업논문 쓰느라 미뤄놨던 연구 페이퍼들도 마무리해야 한다. 일은 찾으면 많고, 가만히 있으면 없다. 이곳이 앞으로 살고 싶은 곳이라면 아마 이직 준비도 미리 해두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