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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se May 28. 2024

내 인생 마지막 졸업식

Graduation Ceremony

박사 과정을 시작할 때 "언제 끝날까"라는 생각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두 번째 학기부터다. 오랫동안 일을 하다 학생으로 학교로 돌아왔을 때, 정해진 커리큘럼만 따라가야하는 학생 생활이 좋았다. 그렇게 맞이한 첫 학기는 마음이 편했다. 그러다가 매일 읽고 쓰는 마감일에 치이다 보니 졸업하는 친구들이 부러운 마음이었다. 그렇게 끝나기만을 바라며 달려왔는데 드디어 2024년 5월 6일, 내 인생에서 학생으로는 마지막 졸업식을 갖게 되었다.


박사 졸업식 겸 아버지 칠순 기념으로 가족이 모두 와서 축하해 줬다. 이 곳 졸업식은 꼭 참석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서 참여하지 않기도 하지만, 가족이 함께 하는 졸업식이어서 의미가 컸다. 월요일 아침 일찍 7시 30분부터 행사장에 입장했다. 지도교수님은 벨기에에서는 졸업식이 없어서 처음 참여하는 미국 졸업식이라고 하신다. 첫 지도학생들이 졸업하는 특별한 자리였다. 박사 가운을 입혀주는 Hooding 세리머니를 해주기 위해서 그전 주 금요일에 연습도 해보셨다고 한다. 참 마음이 따뜻한 분이다.


학부와 박사 과정을 미국에서 졸업하고, 한국에서 다닌 석사는 코로나로 인해 졸업식을 하지 않아서 한국 졸업식은 어떤지 모르겠다. 학부 졸업한 지가 너무 오래돼서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스태디움에서 진행된 졸업식장 규모가 참 거대했다. 대학원생 졸업식은 학부생 졸업식과 별도로 진행됐다. 박사 졸업생은 1층에 지도교수님과 함께 앉고 석사 졸업생들은 학과별로 나눠진 구역에 따로 앉았다. 


졸업식장은 일찍 들어와야 했지만, 행사는 9시에 시작해서 10시 30분에 금방 끝났다. 식이 시작되면 총장, 부총장님의 연설이 끝난 후, 지도교수님이 박사 지도학생들에게 후딩을 해준다. 그리고 들어올 때 받은 QR코드를 들고 있다가 박사 졸업생들은 스테이지로 이동할 때 건네주면 한 명씩 개인별로 호명해 주고 사진을 찍어준다. 그리고 석사 학생들은 각 학과별로 축하해 준다.


졸업식이 끝나고 가족, 친구, 지도교수님과 함께 사진을 찍고 내 인생에 마지막 졸업식 순간을 남겼다. 지난 3년 동안 빨리 졸업하고 싶은 마음으로 열심히 달려왔는데 졸업식을 하니 드디어 종지부를 찍은 기분이다. 지도교수님은 부모님께 학교 로고가 있는 키체인을 선물해 주셨고, 나에게는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선물로 직접 쓴 편지와 기프트 카드를 주셨다. 프로그램 처음부터 끝까지 따뜻한 마음으로 지지해 주는 지도교수님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가족과 함께 4시간 운전을 해서 라스베가스 (Las Vegas)에 도착해서 축하했다. 미국에 오기를 너무나 싫어하는 아들은 결국 마지막에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오진 않았다. 박사 과정 내내 기다렸는데 졸업할 때도 오지 않으니 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해왔던 많은 기대도 이제는 조금 더 내려놓기로 했다. 그래도 '언젠가 와서 함께 공부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그날이 어여 오면 좋겠다.


졸업을 하고 제일 좋은 건 컴퓨터를 매일 켜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졸업식 후에 지난 3주 동안 컴퓨터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번아웃일 수도 있다. 그동안 치열하게 읽고 쓰고 앞만 보고 달려온 경주에서 결승선에 들어와 후련하게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기분이다. 졸업 후 가족들과 약 10여 일의 여행을 하고, 그동안 정들었던 애리조나 짐정리도 후딱 하고, 너무 더워지기 전에 이사했다. 올여름을 보낼 오레곤 포틀랜드에 잘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이제 컴퓨터를 켜본다. 그동안의 학생 생활이 오래전 일로 여겨진다. 이제 졸업 후의 새로운 시작 (the next chapter)이 기대된다. 

대학원생 졸업식
박사학생들만 호명해주는 The Walk
총장님 연설
지도교수님이 주신 손편지와 졸업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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