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
안녕하세요.
크리스마스가 끝난 한국은 분위기가 좀 어떤가요? 여기는 오늘까지 공식 휴일이라 마트도 안 열고 거리도 텅텅 비어있어요.
한국에서 있는 걸로 대충 해 먹는다고 하면 비빔밥이 국룰이었던 거 같아요. 특히 명절 연휴에 말이에요. 그런데 이번에는 장을 볼 수도 없고 저희 집 냉장고에서 제가 쓸 수 있는 공간은 딱 한 칸이라 미리 많이 사두기도 좀 그런 상황이었어요. 있는 거라곤 짜투리 과일과 누구 생일 때 먹다 남은 와인 조금, 떨이 감자 몇 알 정도? 물론 계란이나 면, 양배추 이런 기본적인 것도 있지만 다음 장 보는 날까지 아껴야 되거든요. 그리고! 감자와 과일 상태가 점점 시들고 있었어요.
그래서 뱅쇼와 감자수프, 빵을 선택했답니다. 한국인으로서 쌀이 있어야 되는 건 맞지만 저는 빵도 아주 좋아해서 항상 빵을 구비해 두거든요. 감자수프가 생각보다 배가 많이 찬답니다. 그리고 여기도 슬슬 한겨울에 다가서고 있어서 따뜻한 와인이 먹고 싶었어요. 나가서 사 먹으면 정말... 한 달은 굶어야 되거든요.
생크림은 없으니 생략했어요. 대신 우유를 조금 넣었구요. 뱅쇼는 한참을 끓여야 해서 와인에 과일을 마구 넣고 불을 먼저 올려놨어요. 감자를 써는데 세상에... 그새 푸릇푸릇하게 독소가 올라온 거 있죠? 그치만 알차게 다 썼어요. 그런 거 하나하나 잘라내고 먹을 형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혼자 살게 된 이후로 내가 먹는 재료에는 유통기한 따위 없어요. 저만 그런가요? 특히 조미료 파우더류랑 상태 괜찮아 보이는 야채 같은 건 바닥까지 싹싹 긁어 쓴답니다.
맛은 꽤 괜찮았어요. 솔직히 생크림 조금 넣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뱅쇼를 마시다가는 혀를 데었지만요. 얼렁뚱땅 즐기는 게 또 자취의 맛이죠.
연말에 혼자 있는 허전함을 달래려 자꾸 음식얘기를 하게 되네요. 유럽에 오면 과일을 많이 드세요. 원하는 만큼, 또 아주 좋은 가격으로 살 수 있거든요. 그리고 겨울에 머무르게 된다면 뱅쇼도 꼭 한 번 끓여보세요. 집안 가득 뱅쇼의 달달함과 과일의 상큼한 향, 시나몬향이 가득해져요. 겨울이 배로 좋아진답니다.
앞으로도 월,수,금 밤에, 부다페스트에서 작은 편지를 보내드릴게요!
Ps. 부다페스트 관련해서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 댓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