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영하는 시간이 적힌 제 시간보다 10분에서 15분 후에 시작하는 영화관의 매너타임이 좋다. 가끔 영화를 예매하고서 어떤 이유로 촉박하게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다들 있지 않은가. 그럴 때 여전히 광고가 나오고 있는 대형 스크린을 보면서 안도감과 함께 영화를 관람할 준비를 할 수 있는 그 타이밍이 나는 좋다.
영화의 첫 시작을 알리는 커다랗고도 작은 사운드나 영화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첫 장면은 나에게 있어서 참 중요한 순간이다. 늘 그렇듯 모든 영화의 첫 장면이나 소리를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나는 왜 그 순간을 그렇게 놓치지 않으려는 걸까? 그러다 문득 내가 다 기억하지 못하기에 그렇게 행동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은 언제나 설렘, 그리고 알지 못한다는 그 오묘한 긴장감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런 순간은 잦지 않다. 일상 속에서 그런 기분을, 내 감정을 느끼는 게 하루에 혹은 여러 날 중 얼마나 되겠느냐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늘 영화의 첫 장면이 중요하다. 놓칠 수 없다. 놓치지 않는 내 두 눈과 온갖 신경들이 한 데 모여 스크린 속으로 내 몸을 밀어 넣으면 이내 나는 영화에 집중하기 위한 준비 운동을 마무리한다.
사람이 많은 영화관에선 대화를 하기 어렵다. 잠시 영상을 멈출 수도 없다. 그렇기에 내가 느끼는 순간의 모든 감정을 옆 사람과 나누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다만 당신도 지금 이 타이밍에선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지 않겠냐는 무언의 신호를 맞잡은 두 손으로 대신할 뿐. 그래서일까? 나는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가 좋다. 잠시 대화를 멈추고 마주 보는 것도 멈춘 채 손끝으로 나누는 온기나 어깨에 살짝 기대어 영화에 온통 집중하게 되는 순간들이 좋다.
영화관에서만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빳빳한 용지에 검은 잉크가 써낸 영화의 제목과 날짜, 시간, 내가 앉을 좌석이 써진 영화표와 A4 용지 크기의 포스터! 영화의 메인인 앞면과 예고편이 가득 담긴 뒷면의 포스터를 나는 버리기가 싫어 꼭 챙겼다. 집에 돌아와선 티켓 전용 앨범에 영화표를 넣고 집에 남은 화일철엔 포스터를 보관했다. 그렇게 하고 나면 내 시간을 어디에 썼는지 기록받는 느낌이라 나는 영화를 보면 티켓과 포스터를 꼭 챙겨 왔다.
다만 아쉬운 건 이제는 핑크색의 얇은 용지에 닳은 잉크가 간신히 나도 여전히 영화표라고 말한다는 것. 어째서인지 영화 포스터를 전만큼 볼 수 없다는 것. 여러 이유로 사라지고 있겠지만 이 두 가지의 재미를 잃은 나는 전만큼 영화관에 대한 애정이 있진 않다. 어쩌면 나는 그 옛날 감성으로 기대어 추억을 회상하며 영화관을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일찍 만나고 싶은 아침에, 헤어지기 아쉬운 밤에, 너무 더운 여름의 한낮을 피하기 위해, 걷기엔 너무 추운 한겨울 바람을 피하기 위해 건네고 들었던 말.
“우리, 영화 보러 갈래요?”
나는 여전히 이 말이 좋다. 이 말이 이끄는 곳, 영화관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