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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난 후 우리 집 현관에 발을 들인다. 조용한 집엔 내가 움직이며 내는 소리만이 간간이 들렸다. 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나는 날이다. 집에는 나를 제외하고선 아무도 없다. 집안일도, 출근한 남편과 딸아이의 방해가 없는 지금 이 순간 나의 외출 준비가 시작된다. 혼자가 좋다니. 결혼 전엔 죽어도 혼자가 싫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을 하고 나니 가끔은 혼자인 시간이 미치도록 좋다.
외출 준비 시작! 가장 먼저 욕실의 환풍기를 끈다. 그리고 유튜브로 샤워할 때 듣기 좋은 팝송을 찾는다. 노래 선곡이 끝나고 잠시 나오는 곡을 들으며 계속 들을지 고민한다. 오늘은 곡이 좋다!
양치를 시작으로 얼굴에 거품이 인 폼 클렌징을 묻혀 동글동글 원을 그리며 세수를 한다. 그 후 허리를 숙여 물에 젖은 머리에 샴푸와 트리트먼트를 한다. 이제 마지막! 따뜻한 온수로 샤워 볼을 적시고 바디워시를 덜어내 손으로 거품을 만든다. 몽글몽글한 거품을 팔부터 다리까지 어디 한 군데 안 묻은 곳이 없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간간이 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꺼진 환풍기로 인해 자욱한 안개가 낀 욕실을 보면서 나는 더 이상 거울 속 나 자신이 보이지 않는 걸 확인한다.
욕실의 온기가 가득한 샤워를 좋아해서 일부러 환풍기를 끈다. 그래서 잠시 물을 틀지 않을 때 그 온기로 버틴다. 그리고 다시 따뜻한 물줄기로 내 목덜미부터 시원하게 거품을 밀어낸다. 시간만 많다면 욕조에 뜨겁지도 그렇다고 너무 미지근하지도 않은 적당한 물을 한가득 받아 몸을 녹일 텐데. 외출의 즐거움이 잠시 뒤로 밀리는 찰나,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뽀득뽀득해진 살결에 식물에 물을 주듯 끼얹는다.
가까운 거리에 둔 수건을 향해 뻗은 손이 내 몸 쪽으로 향할 때 찬바람을 되도록 적게 만들며 남아있는 물들을 닦아낸다. 물기 마른 살갗은 안개로 자욱한 욕실 문을 지나 안방의 공기를 마신다. 새로 산 수선화 향이 가득한 바디로션과 핸드크림을 바르고 헤어미스트를 뿌리면 내게서 나는 수선화 향이 나를 몹시도 설레게 한다.
차가운 공기가 벤 지하 주차장을 지나 지상으로 나오면 오후 두 시의 햇살이 차창 가득 들어온다. 나는 일광욕 부럽지 않은 차광욕을 즐기며 차창으로 보이는 하늘, 적당히 따뜻한 햇살이 주는 몸을 데우는 온도,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외출에 나선 하루에 만난, 기분 좋은 친구와의 대화에 목이 마를 때마다 시원하게 목을 축여주는 아메리카노까지. 나는 그 순간을 만끽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역시! 어디 하나 빠짐없이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
나는 그렇게 행복을 충전한다. 이 행복 충전은 하원한 딸아이와 오늘 하루치 육아를 건강하게 마무리하게끔 도와주는 나의 소중한 연료다. 그렇기에 나는 늘 딸아이가 등원한 시간 이후 내 행복을 어떻게 충전할지 생각한다.
어떤 날엔 혼자서 카페를 찾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마음껏 읽기도 하고, 동네 지인을 만나 수다를 떨기도 한다. 어느 날엔 혼자 먹는 점심에 보고 싶은 드라마를 보고, 혼자서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해 맛집을 알아보고, 또 마트에서 사야 할 물건을 담으며 내가 사고 싶은 것을 둘러보는 아이쇼핑을 즐긴다던지.
무척이나 소소하지만 나는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거나 동네 지인을 만나 수다를 떠는 것만으로도 내 삶의 싱그러움을 유지하는 하나의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육아를 지치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아이를 대할 내 모습을 정돈하고 행복 연료를 원동력으로 마지막 아이의 잠자리를 준비한다.
어느 날부터 나는 아이가 언제 잠들까 노심초사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와 어두운 방에서 익숙해진 밤눈으로 서로를 마주 본다. 신났음을 표현하는 몸짓과 말, 아이의 짧은 팔이 내 목을 끌어안는 순간, 장난스러운 입맞춤을 해올 때 나는 다시 아이로부터 글쓰기 연료를 충전받는다. 나는 그렇게 나의 사랑스러운 딸아이로부터 글 쓸 자양분을 넘겨받는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핸드폰 화면엔 숫자 100과 내 모습이 보인다. 핸드폰도 나도 충전 100프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