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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an 15. 2024

일을 하면 행복하세요?

1-1. 0에 가까워지기

00. 회복이 아닌 퇴보


"지금 당장 입원하셔야 해요."

지난 5월, 정기검진에서 검사 수치가 심각하다며 병원에서 당장 입원을 권했다. 걱정 어린 시선과 이 상태까지 방치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는 듯 의사 선생님의 까칠한 어투가 도드라졌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나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가히 상상치 못했으리라.

"저 내일 출근해야 되는데요. 어려울 것 같아요."

마치 은행 업무를 미루듯, 번거로운 일을 처리하는 듯한 나의 태도에 의사 선생님은 벙진 표정으로 나를 한참 쳐다보셨다.  하지만 난 강경했다. 지금 당장 입원하라는 재차 요구와 걱정 어린 엄마의 핀잔에도 난 기필코 몇 주를 미루어 입원 날짜를 잡고야 말았다. 그리고 심각한 상태에서도 야근을 병행하며 항상 그랬듯 나보다 일을 위해서 살았다. 당장 내일 죽을 사람이 오늘 일에 매달리는 것처럼. 미래 없는 현실에 집착했다.  


"퇴사하는 게 낮지 않겠어요?"

정밀 검사 결과 병원에서 한 달 뒤 시술을 받기로 결정이 났다. 시술을 위해서는 3일 입원을 해야 했고 무엇보다도 컨디션 조절이 가장 중요했다. 현재도 컨디션이 많이 떨어져 있으니 한 달 동안 절대 무리하지 말고 기본 체력은 회복하고 와야 한다며 의사 선생님의 마지막 당부가 있었다. 입원 이슈로 회사 부장님과 면담을 하던 중 그는 나에게 퇴사를 조심스럽게 권했다. 자신이 먼저 퇴사를 권하는 게 옳지 않다 느끼지만 그럼에도 몸을 먼저 생각하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이었다. 그러나 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잠시 여행 다녀오려는 것처럼, 잠시 해결해야 할 일을 처리하러 다녀오는 것처럼 그렇게 떠났다.

 걱정과 다르게 좋지 않은 컨디션에도 시술 성공적이었고 별 이슈없이 예정대로 퇴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난 그때까지도 나에게 일어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제까지 병상에 누워있다가 그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에게 가혹하다 느끼지 않았으며 그저 해야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일이라는 게 그렇지 않냐며, 사회생활이라는 게 원래 이렇지 않냐며. 하지만 마피아 게임에서 굳게 믿었던 나의 추리가 완전히 빗나갔을 때처럼 내가 지나온 과정은 회복이 아닌 퇴보의 과정이었다. 회복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목숨 세 개를 다 써서 죽은 캐릭터처럼 난 게임 아웃이 되었다.  



 01. 행복이 아닌 성공


누군가에게 권유를 받은 게 아니었다. 스스로가 본능적으로 필요성을 느꼈으리라. 걸을 수 없는 지경이 돼서야 어쩔 수 없이 일을 손에 놓게 된 나에게 문제가 있음을 직감했다. 그제야 끊임없이 나에게 말했던 엄마의 조언이 떠올랐다. "너 지금 심각해. 일 중독을 넘어선 강박이야" 그리고 그제야 또한 생각났다. 회사를 이직하기 전, 센터에서 일회성 상담을 받았을 때 이와 비슷한 말을 들었었다. "일에 대한 강박이 좀 있으세요. 아직은 괜찮지만 계속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큰일 나실 수도 있어요"
사단이 나버린 후에야 수습을 급하게 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일 강박'이라는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되자 그때부터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강박이 시작되었다.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심리상담센터를 방문했다. 나의 병을 고쳐달라는 태도로. 진단을 하고 바로 약을 처방해 주기를 원했다. 약 먹고 하룻밤 푹 자면 나을 수 있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면 행복하세요?"

상담사는 꼬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나의 대답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해요"였다. 상담사는 나의 질문에 놀라는 듯 다음으로 행복이 무엇인지 정의를 물었으나 나는 도리어 일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해 묻는 것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일을 행복하기 위해 하는 사람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겼으며 나의 대답은 무엇을 의미하나 다시금 되짚어 보았다. 그리고 난 부끄럽지만 솔직한 답변을 했다. "전 성공하고 싶어요. 그게 행복해지는 길이라 생각해요" 상담사는 끊임없이 질문했다. "왜 성공하고 싶으세요?" 나는 또다시 생각했다. '성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나' 나에게 인간은 누구나 성공하고 싶고 성공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건 본능과도 같다고 생각했기에 성공과 행복에 관한 질문은 마치 '왜 배고프면 밥을 드세요?'와 같게 느껴졌다. 하지만 상담사는 마치 누구나 배고플 때 밥을 먹는 이유는 다르다는 듯 집요하게 그 이유를 물었다. "전 제가 엄마처럼 살지 않기를 바래요. 혼자서도 모든 걸 잘 해내는 독립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요" 선생님은 나에게 미리 받은 문장완성검사지를 뒤적거리더니 잠시 머뭇거렸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엄마라고 적으셨는데 미워하는 사람도 엄마라고 적으셨네요. 이유가 뭘까요?"


 난 분명 '일에 대한 강박'을 없애기 위해 왔지만 첫 상담 이후 '해답'보다 '물음'만 가득 안게 되었다. 돌아가는 길에 처음으로 '모든 사람은 나처럼 성공을 바라지 않나'라는 질문과 '나는 왜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증오할까'라는 물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 해답을 찾지 못한다면 난 아마도 다음에도 '인정'과 '성공'에 목숨 거는 사람으로 머물 것이라 직감했다. 어쩌면 난 누군가를 부정하기 위해 살았는지도 몰랐다. 닮고 싶은 인생이 아닌 되고 싶지 않은 인생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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