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년생, 광자씨

1-1. 엄마의 탄생

by 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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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자 씨는 1966년 전라남도 증도 섬에서 태어났다. 작은 섬이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꽤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손가락 다섯 개로 다 셀 수 있었던 자식들 손에 땅을 상속해 주기로 약속했지만, 유일하게 제외된 건 둘째 광순이와 셋째 광자였다. 그녀들은 섬 마을에서 밭일과 집안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던 계집애들이었다.


광자 씨가 섬 마을에서 벗어난 건, 고등학교 때였다. 10살 터울의 첫 째 광복이 오빠가 있던 목포로 다짜고짜 찾아가 자리를 잡았다. 광자 씨는 그 뒤로, 수도권에 있는 큰 기업에 취직했다. 광자 씨는 그곳에서 연희 씨를 만났고, 스물다섯에 결혼을 했다. 그 시절, 결혼식 사진에는 경직된 두 남녀만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삶이 희망으로 가득 찼었는지 알 수 없었다.


광자 씨는 훗날 두 딸을 식탁에 앉혀놓고 이런 말을 했다.


“소개팅에서 만난 너희 아빠는 정말 안 돼 보였어. 한 번도 배불리 밥을 못 먹어본 사람 같았어. 근데 아빠를 소개해준 친구가 그러는 거야. 너라면 저 불쌍한 남자를 거둬줄 것 같았다고 말이야.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둘 째는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광자 씨는 연희 씨에 대한 푸념을 원 없이 할 날을 기다리며 우리를 키운 게 아닐까 하고. 하지만 광자 씨는 조금 성급했다. 딸들은 아직 연희 씨에게 실망할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아직, 연희 씨는 딸들에게 우상이었다.


가끔 광자 씨는 축 늘어진 가슴을 부여잡았다. 흘러내리는 것에 대한 저항의 손짓이었다. 그럼에도 딸들은 광자 씨가 홀로 견뎌온 그 시간들을 알지 못했다. 지하 단칸방에서 종일 우는 갓난아이를 달래야 했던 고된 수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광자 씨는 조금이라도 자신의 짐을 덜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그 더운 여름에 진통이 오는데 아빠는 없고 택시는 안 잡히고.. 정말 그날 너랑 같이 천국 가는 줄 알았어”


하필이면, 연희 씨가 출장을 갔던 가장 더운 여름날이었다는 걸 30년째 둘째 생일마다 강조했다. 광자 씨는 그렇게라도 자신의 수고와 희생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어 했다. 그때 가장 원망스러웠던 건 둘째가 아니라 옆에 없었던 연희 씨였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광자 씨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왜 그날 네가 태어났어’가 아니라 ‘왜 그날 당신은 없었어’였다. 하지만 광자 씨는 평생 이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여자였다면 진작에 이혼하지 않았을까?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