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여, 박수를 치게나. 드디어 이 희극이 막을 내리지 않나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베토벤이 죽음 앞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하나의 '희극'으로 묘사하였다. 그리고 연극의 막을 내리는 그 순간을 기뻐했다. 끝난다는 것은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드디어 '끝에 다다른다'라는 표현으로 '죽음'을 바라보는 건 어떨까.
원래 고통스러운 순간은 내리막이 아니라 오르막이다. 거친 마지막 숨을 내쉬는 곳은 '정상'일 것이다. 미생에서 완생이 되는 끝은 '죽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오늘도 많은 것과 '끝'을 맺는다. 3월의 날씨는 겨울과의 '끝'을 준비하고 있으며, 직장인들은 금요일 퇴근으로 한 주 노동의 '끝'을 기다리고 있다. 나 또한 한 주 동안 힘겨웠던 글쓰기 노동의 '끝'을 기대하고 있다. '끝'은 우리에게 단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생명의 숨이 끊어지는 그 끝은 고된 노동의 끝과는 결이 다를 것이다. 노동은 다시 시작될 것 이기에 그 끝맺음은 '슬픔'이 아닌 '후련함'에 가까울 테다. 그러나 사라진 생명은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시작할 수 없는 영원한 끝에 이르는 것이다.
나는 한 마리의 개를 잃었다.
나는 한 마리의 개를 잃으면서 새롭게 시작한 일이 있다. 유기견 센터에 적지만 3년 넘게 후원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강아지였던 '해피'와 닮은 강아지를 보면 한 번 더 눈길을 주며, 이제는 느끼지 못하는 냄새와 온기를 그들에게서 조금씩 얻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반려견을 잃은 사람들'에게 더 깊은 유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해피와 물리적인 접촉은 할 수 없지만, 함께 맞이한 '끝'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 한 마리의 개를 품었던 마음으로 더 많은 개를 품는 후원을 시작하였고, 그와 맞닿아 있는 형제들에게 더욱 친밀하게 '손'을 내밀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개'를 소유하는 사람이 아닌 '개'를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사랑은 비로소 '해피'를 넘어선 '존재'에게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한 마리의 개를 잃었고
나는 하나의 세계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