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끝나는 길,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하필이면 끝나는 길. 짐을 챙기고 비행기 시간에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는 서두름 속에서, 그렇게 좋아하는 휴대폰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 생활에 제약이 생기는 동시에 나는 휴대폰 속 sns에 나의 생활 반 정도를 담그고 지내왔다. 카카오 스토리를 쓰다가 요즘은 대세를 따라 인스타그램으로 옮겨왔다. 가끔씩 잘 나왔다고 생각하는 사진을 올려 친구들의 하트를 받아 내 존재감을 느낄 수도 있으며,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짧은 멘트와 함께 남겨 사색적인 척하며 좋은 곳에 갔다는 것을 자랑할 수 있다. 게다가 인스타그램 속 알록달록 사진을 훑어 내리면 감각있는 이미지로 눈요기를 할 수도 있고, 아이를 데리고 갈 만한 키즈카페, 전시회, 공연 등 액티비티 정보 등을 얻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가보지 못한 멋진 여행지의 사진도 별다른 검색의 노력 없이 우연히 주워(?)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틈만나면 들어가보는 일상의 도피구이며 일상을 계획하는 도구인 셈이었다. 늘 휴대폰은 나와 함께 붙어있었다.
그 중에서도 종종 내가 위치까지 눌러보며 확인하는 사진들은 해외여행 사진이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한달 살기 여행, 호텔 리조트 여행, 크루즈 여행 등등 이국적인 배경 속에 즐거워보이는 그들이 어찌나 행복해보이던지.
20대에는 명품가방과 멋진 옷이 그렇게 부러웠는데, 실시간 공유가 되는 sns에 접속하기 시작한 어느 순간부터는 프리스티지 클래스를 타고 편하게 해외 먼 곳의 리조트로 자주 여행하는 가족이 그렇게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서 밥을 하고 있는데, 저렇게 멋진 곳에 놀러가서 누리고 있는 삶도 있구나.
그동안은 보기만 해왔지만, 이번엔 나도 남편 휴가에 맞추어 해외여행을 떠났다. 드디어 나도. 남편은 어디를 가든 잠이나 실컨 자고 싶다고 했으나 임신한 나의 의견을 백프로 반영해 주어 6시간 이상 걸리는 비행기표를 사고 유명한 체인의 호텔을 예약했다. 둘째가 나오면 멀리 가기 어렵다는 핑계로 휴가철 성수기의 비싼 가격도 신경쓰지 않았다.
드디어 나도! 그들처럼 열심히 이국적인 풍경을 찾아 아이와 웃으며 사진을 찍고, 루프탑 수영장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멋진 야경과 함께 사진을 찍고, 뭔가 아쉬워서 야경을 또 찍고, 리조트 선베드에 앉아 남편과 아이가 노는 동영상도 찍고, 내가 그 안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풍경 끝에 내 발끝을 넣어 찍고, 또 찍었다.
그런데, 그 사진들을 모두 잃어버렸다. 나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마치 옛 연인을 잃은 듯 눈물을 흘렸다. 늘 붙어다니던 습관 때문에 가져간 사람에 대한 분노와 잃어버린 슬픔 그리고 부재로 인한 불안감이 오래도록 가슴을 후벼파는 느낌이었다.
사진이 추억이라고들 하지만, 내가 찍었던 사진들은 내 인스타그램을 멋지게 장식할 이미지이기도 했다.
오! 나의 허영심이여!
여행은 비우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도 한다. 내 마음속 허영심과 마주하고 비움에 대해 깨닫는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