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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Oct 09. 2019

우리 모두에게 익숙해져 있는 것들

트레바리 네 번째 책 '이갈리아의 딸들'과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

영화에 비치는 순간순간의 장면들이 나에게 어색하게 또는 불편하게 보였다는 건, 살면서 내가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이 나의 안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일 테다. 여자인 나에게 불평등했던 순간을 '알아채지도 못했다'는 것을 영화를 보는 도중 깨달았을 때에는 아뿔싸. 싶기까지 했다.


몇 주 전, 의도치 않게 회사의 임원들과 부장들이 함께 하는 저녁 술자리에 대리 주제에 끼게 되었다. 40대들, 소위 말해 꼰대들이 가득한 이 술자리에서 여자는 나 혼자. 그 나이 때에 관심이 많을만한 주제들이 오고 갔고, 다양한 주제들 사이에 골프 이야기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었다. 


권 대리, 권 대리는 골프 안 치나?

아... 네. 저는 골프에는 아직 관심이 없네요. 하하.

그래? 그럼 나중에 우리 스크린 골프 칠 때 캐디 하러 와. 공 안 맞을 때 응원도 해주면 좀 좋니.


뭐라고? 너네 골프 칠 때 나보고 기쁨조를... 하라고? 저 대화가 끝난 후에 남자들의 웃음소리로 상황이 어찌어찌 무마되긴 했으나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 뒤 붉어진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회식이 끝나고 2차를 가는 길, 나는 조용히 타의 반 자의 반 그 회식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들었던 생각들; 첫째, 남자들의 의식 속 툭툭 튀어나오는 여자의 위치가 밖으로 드러났다. 둘째, 임원과 부장들이 열명 남짓 모여있는 이 저녁식사 겸 술자리에 여자가 없다는 건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싶은 권 대리의 앞길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여성은 당연히 브래지어를 해야 하고. 여성은 당연히 제모를 해야 하고. 여성은 당연히 화장을 해야 하고. 여성에게는 아름다운 향기가 나야 하고. 여성은 의견을 내세울 때 드세면 안 되고. 여성은 '여성다워야' 한다. 아름답게 가꾼 여성다운 여성은 남성에게 지배의 대상, 성적 욕구의 대상으로 완벽한 모양새를 갖추었을 때 존재의 의미가 빛을 발할 수 있다. 여성의 권리를 내세우는 것은 사치. 페미니스트들은 다 못생겼다. 못생긴 사람들이 예쁘질 못하니 페미니스트가 될 수밖에. 아름다워야 하는, 당연시되는 여성의 모습 뒤 숨겨진 사상들과 생각들은 과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깊숙한 곳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는 것들이다. 


장면들과 생각을 표현하는 디테일들이 부족할 수 있으나 이 영화가 던지는 시사점은 분명하게 있다. 그리고 그 시사점이 나에게 가져온 생각들은 내 일상에서의 행동들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남성이 바라는 여성의 모습으로 살아왔을지도 모르는 순간들을 조금은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여 행동하는 것. 페미니스트답게 생각의 루트를 바꾸고 일상의 행동들부터 바꾸는 것.


우리의 일상에서 당연시되는, 여성과 남성의 것으로 나뉘는 이분화된 생각과 행동들, 그리고 잘못된 성차별과 성적 폄하들을 우리 스스로 다시 들여다봐야 하며, 들여다봄을 통한 깨달음 그리고 그 깨달음 뒤의 일상에서의 사소한 '우리의' 변화가 사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Trigger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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