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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Dec 26. 2020

흰 머리가 반가운 이유

아침 일찍 출근길 엘레베이터 거울에서 마주친 내 얼굴. 화장을 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인지 때깔이 참 곱다. 파운데이션이 잘 먹은 피부에 얼마 전 새로 산 립스틱이 꽤 잘 어울린다.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다시 마주한 얼굴은 여전히 생기 있어 보이지만 애쓴 느낌이 난다. 연말은 역시 피곤하다. 쾡한 눈빛을 보니 이번 주는 일찍 잠들어봐야겠다 생각한다. 나이 한 살을 더 먹을 때가 가까워지는 티를 눈빛이 못 숨기고 있다. 머리 가르마를 좀 넘겨봐야겠다는 생각에 오른쪽으로 가르마를 가르는 순간 정수리 가까이에서 발견한 흰머리. 넘기던 손동작 올-스탑. 그 옆자리에 또 하나 발견. 이번 해 들어 흰머리가 자주 출몰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면 주기적으로 흰머리 뽑아주기. ‘너, 나이 먹고 있어!’라고 이 것들이 굳이 상기시켜 주지 않아도 이미 몸소 체험하고 있건만 이제 본격적으로 경고 메시지를 날리려나 보다. 





시간은 초침의 소리처럼 점이 되어 끝이 보이지 않는 선을 그린다. 그 선을 토막 내어 우리는 ‘하루’라고 하기도 하고 ‘한 달’이라고도 한다. 어렸을 때는 시간을 얇디얇은 실처럼 상상했고 우리는 그 실에 꿰어져 하염없이 앞으로만 걷는다고만 생각했는데, 나이가 드니 좀 다르다.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며 존재들이 쌓이고. 좋아진 것들이 나의 취향이 되어 쌓이고. 직장인으로서의 삶은 어느새 10년 차가 되어 짬밥이란 게 쌓이고. 시간은 여전히 끝이 없는 수평선처럼 올곧게 흐르지만 넘치지 않는 그릇처럼 사람에 따라 넓고 깊어지기도 한다는 걸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됐다. ‘사람이 참 속이 깊어.’라는 말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 것도,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만 자주 내 마음은 내비치고 기대는 것도 그 ‘깊이’라는 것이 가지는 소중한 의미를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저 나이를 먹는 것에 센티해지기보다는 어떻게 먹어야 할지를 더 고심하게 된다. 단단하지만 유연한, 그리고 깊은 마음을 가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조금은 더 즐겁고 멋질 수 있도록.



한창 흰머리 뽑기 삼매경에 빠지고 난 후 쌓여있는 10여 가닥의 머리카락을 보면 사실 좀 놀랍기도 하지만 (나한테서 이런 하얀 머리가 난다니) 마냥 속으로 세기만 했던 나이가 말 그대로 ‘늘어간다’는 징조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생경하기만 하다. 시간은 나에게 흰머리를 주었으니 나는 다가오는 해에 무엇을 담아 시간에 보답할까 더 고민해봐야겠다. 그 고민은 또 나에게 흰머리를 줄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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