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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Feb 26. 2021

아름다운 과거

과거는 아름다워진다. 멀어질수록 더 애뜻해진다. 마음이 그 어떤 쪽으로 동했다 하더라도 ‘마음이 움직였다’는 그 기억을 토대로 미화된다. 그렇기에 어떤 과거는 시간을 거슬러 반복하고 싶고 그 어떤 과거는 순간을 번복하고 싶다. 널찍한 창 앞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나의 몸은 위태로이 솟은 지지대가 긴 의자 위에 두고 마음은 유유히 과거를 탐닉한다. 그리고 지난 밤 그와의 통화를 떠올렸다.


그는 예전과 다르지 않게 나의 이름을 부르며 전화를 받았다. 애칭보다는 서로의 이름으로 부르기를 좋아한다던 나의 말에 우리는 만나는동안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나를 오롯하게 불러주는 그가 좋았다. 잠시의 정적이 흐르고 우리는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나는 최근 회사에서 난데없이 불똥이 튄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회사일이 터져 난처해진 이야기를 해주었다. ‘공교롭게 비슷한 시기에 힘든 일이 있었네.’ 올해 시작부터 이러면 또 무슨 일이 있을는지 무서워죽겠다는 장난스러운 맞장구와 함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도 따라 웃었다. 그와 나의 웃음소리가 전화를 사이에 두고 겹쳐 흐를 때 종결형인줄만 알았던 우리의 과거가 잠시 재부팅된 것 같았다. 그에게 바라는 것이 생길까 두려워졌다. 시간이 늦었으니 이제 자자는 말과 함께 우리는 그 어떤 기약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마치 내일 아무렇지 않게 연락할 것처럼.



아름답게만 새겨지려는 과거를 굳이 헤집어 보기도 했다. 스스로에게 끈질기게 묻기도 하고 지난 일들을 지독하게 리플레이하기도 하며 기억들을 산산조각냈다. 도망쳐보기도 했다. 밀물처럼 겉잡을 수 없이 퍼져오는 기억들의 반대방향으로 한없이 뛰었으나 어느새 종아리까지 젖어버린 내 다리를 보곤 철푸덕 주저 앉아버리기 일쑤였다. 과거의 나를 자주 만났고 방황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과거의 나는 나에게 물었다. ‘달라질 과거는 없어. 지금의 너는 그 과거를 통해 어떤 사람이 되었어?’라고. 비로소 과거는 아름다워져야만 하는 의무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시간들마저 원통하고 비참하게 남는다면 지금의 나는 스스로 대답할 힘조차 얻지 못할 테니까. 그제서야 보내온 지난 날들은 그 자리에 두기로 했다. 아름다워지는 과거들은 아름다워지는대로 마음에 새기기로 했다. 오늘도 난 과거로부터 멀어졌고 내일은 또 오늘을 과거라 부르며 더 멀어지겠지만, 딱 멀어진 정도는 ‘지금’이라는 삶의 모습에 더 밀착해서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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