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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mycanada Aug 24. 2020

01. 꿈을 꿀 때는 눈을 똑바로 뜰 것

줄리와 줄리아처럼 



출처: 구글




  <줄리 & 줄리아>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한창 음식 영화에 빠져있어 심야식당 시즌 1, 2와 카모메 식당을 단숨에 해치워버리고 '뭐 볼만한 것 없을까?' 하고 있을 때, 넷플릭스는 추천 목록에 '줄리&줄리아'를 띄워줬다. 서양 음식, 특히 발음도 어려운 전통 프랑스 요리니, 뭐니 하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요리 영화로 가장한 로맨스물이 대부분인 넷플릭스에서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첫 장면부터 음식이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별다른 기대 없이 보기 시작한 이 영화에서 줄리의 모습은 스킵 버튼을 누르기엔 나와 닮은 점이 너무나 많다.  8년간 소설가를 꿈꾸며 살다가, 서른에 911테러 상담사라는 말단 공무원의 자리에 있는 그녀는 조수까지 두며 일하는 '임원급'의 다른 친구들과의 대화가 불편하고 찝찝하다. 사회의 '을'인 줄리의 뇌로 '갑'들과 대화를 이해하고 받아치기엔 역부족이다. 자꾸만 테이블의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그런 줄리가 친구들은 못마땅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끄러운 소리가 그대로 들리고 1층 식당 냄새가 고스란히 올라오는 '최악'의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줄리는 짐을 풀다가  초라한 부엌에 기대어 주저 앉아 한숨을 푹 내쉰다. 갓 스무 살의 내가 상상했던 서른의 나는 조금 다를 줄 알았는데, 막상 가진 것 하나 없는 초라한 나를 매일 마주하는 순간. 나름대로 열심히 달려 온 것 같은데, 돌아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나를 매일 확인하게 되는 순간. 남들은 나아가고, 나는 멈춰져 있는 것만 같은 그 시점에서 줄리와 나의 한숨이 섞인다. 



아, 그냥 맛있는 걸 보려고 시작한 영화에서 나는 또 이렇게 울컥해 버렸다. 망할놈의 공감능력. 







출처: 구글


   


  후회와 만족에 관한 심리학 강의를 본 적이 있다. 후회와 만족은 얼핏 보면 슬픔과 기쁨과 같이 상반된 감정이라고 생각 할 수 있는데, 사실상, 이 둘은 상관이 거의 없는 독립적인 감정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후회와 만족을 동시에 느끼는 것도 가능하단다. '후회'라고 함은, A를 선택한 자신이 B, C, D라는 선택을 했으면 어떨까 하는 선택지들 간의 비교에서부터 나오는 감정이다. 그래서 비교와 후회를 같은 맥락으로 보는 심리학자들도 있다. 결국 후회라는 것은 너무나 많은 생각과 감정을 끌어내, 인간을 괴롭게 한다.  

   반면 '만족'은 비교에서 나올 수 없는 감정이다.  예를 들면, 남과 비교했을 때 보다 나은 내가 조금 더 나은 처지라고 해서 그것이 내 삶의 만족을 주지는 않는다. 그저 '아, 다행이다.'라는 감정만 줄 뿐. 하지만 무언가를 이루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만족'한다. 일주일에 0.5kg을 빼는 목표를 달성했을 때, 매일 10분 더 일찍 일어나는 목표를 달성했을 때도 만족한다.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엔 간단하다.  만족은 자신이나 혹은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있는 관계에서 나오는 감정인 것이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사소함과 대단함을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크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비교할 대상이 없으니까. 



출처: 구글 



 

서른 앞에선 줄리는 자신에게 '후회'보다는 '만족'을 하기로 했나 보다. 작가가 꿈이었던 그녀는 좋아하는 요리를 통해 그 꿈을 이루고자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바로 <줄리&줄리아> 프로젝트. 365일 동안 500개가 넘는 레시피를 마스터하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녀의 블로그에 고스란히 적는 일이다. 물론 쉬운 것은 하나도 없다. 처음 막 시작한 새내기 요리 블로거에게 사람들이 관심을 둘 리 만무하고, 요리재료는 터무니없이 비싸고, 자신의 어머니에게서조차 쓸데없는 짓이라고 타박받기도 한다. 그래도 그녀는 계속한다. 이제는 영화에 어떤 요리가 나오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게 무엇이든 -그 결과가 열심히 속 채우고 꿰맨 생닭이 바닥에 떨어져 똥망하게 되는 것 일지라도-, 마지막이 성공이든 좌절이든 영화를 보는 내내 그녀를 응원한다.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면서.  

     영화가 끝나고, 나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빈 종이에 서른이 되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끝이, 좌절이든 성공이든 개의치 않기로 했다. 나 자신만 만들어 낼 수 있는, 만족이라는 귀한 감정을, 곧 서른이 될 나에게도 선물하기로 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줄리&줄리아> 속의 줄리처럼 우연처럼 시작한 블로그에서 출간작가가 되는 영화 같은 결말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언제까지나 현실은 현실이니까. 그래도, 꿈을 꿀 때는 눈을 똑바로 뜨기로 한다. 시험 기간에 몰래 해리포터를 숨겨 놓고 읽던, 친구가 없어 외로운 마음을 책에서 위로받았던, 그래서 자신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위로되는 글을 쓰고 싶었던, 여전히 작가가 꿈인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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