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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 Lee Oct 09. 2017

[예술경영 이슈]대중성 상업성 예술성 ?

 대중성과의 불필요한 관계짓기

이번 여름, 나는 윤종신의 행보에서 예술경영에서 다루어 볼만한 두 가지 이슈를 읽었다. 2탄에 나누어 브런치에 담아낼 예정이다. 먼저 1탄




1. 대중을 좇는 아티스트를 향한 불편한 시선

"창작자가 피해야 하는 게 있다면?"이라고 묻는 질문에 윤종신은,

"대중이 좋아하는 걸 좇아 했더니 계속 망했다. 사람들 취향에 맞추는 건 '업자(業者)'이고, 내가 좋아하는 걸 던지고 설득하는 게 '아티스트'란 걸 깨달았다." 라는 대목이 나온다.


http://www.azquotes.com/author/1360-Joseph_Beuys

이것을 좀 더 확대하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나의 길을 개척하며 나아가는 삶의 여정 자체가 예술적(artistic)인 삶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한 이들을 예술가라고 할 수도 있고 이럴 때 요셉 보이스 Joseph Beuys의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라는 말을 인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기사로 돌아와,



그의 이 짧막한 인터뷰에서 나는 예술경영에서 논하는 대중성과 예술성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려 한다.


예술경영학에서 다루는 문화예술단체는 주로 비영리기관이다. 이유는 예술경영학의 탄생하게 된 배경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술경영학이 생기기 이전, 공연예술이 갖는 경제적 딜레마를 통해 예술에 대한 재정적 지원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논문을 시작으로 예술경제학이 근대경제학의 한 분야로 나타난다. 공연예술단체의 만성적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도달하며 이 때문에 예술활동에 대한 공공기금 지원의 필요성에 의하여 예술경영 또한 학문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즉, 예술계(art world)의 특수성에 의하여 생겨난 예술경영학은 늘 주요한 문제에 봉착한다. 한정된 공적 기금을 어떠한 기준으로 배분해야 하는가가 그것이다. 정부의 문화복지정책 또한 이 질문을 주된 골자로, 예술의 공적 지원의 대상에 따라 다양한 문화정책을 펼쳐왔다. 공급자인 예술가, 수혜자인 시민, 그런 예술가와 시민이 만나는 예술단체와 기관 등.


하지만 그 기준을 정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문제이다. 도대체 왜 예술을 지원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하여 그 질문이 '해결'되었다고 해도 예술이 지원의 대상이 된 이상, 순수성과 상업성 사이의 딜레마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대중성있는 아티스트?


윤종신의 위 대답은 art world에 있는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줄만한 대목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걸 던지고 설득하는 것에 성공한 아티스트'에게 던져지는 곱지 않은 시선을 종종 목격했다. 그러면서 나는 '대중성을 지향하는 것은 결국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 예술시장에 과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생겼다.


설득에 성공했다는 것은 곧 명예와 부로 이어지게 된다. 그것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그리고 이어지는 그에 대한 평가는 종종 대중성을 지향했기에 상대적으로 예술성은 낮았다고 귀결된다.


생각보다 어려운 알고리즘이라는 것을 금새 알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법률적 근거에 의해 예술조직이 사회적 기업과 비영리 단체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영리를 목적으로 설립된 조직이 막상 돈을 벌지 못하니 사회적 기업 혹은 비영리 단체로 인식되는 것과 비슷하다. 다시 말해 대중성을 생각하며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가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해왔던 소위 소신있는 작가로 인식되고, 반대로 우연히 대중에 의한 폭발적인 관심으로 스타 작가가 되자 사람들에 의해 대중의 입맛에 맞게 작업했다고 손가락질 받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월간미술 홈페이지 http://monthlyart.com


월간미술 8월호의 특집 「2017 참을 수 없는 전시의 가벼움?」이란 주제에서도 '대중이 생각하는 ‘가볼만한 전시’와 미술계에서 보는 ‘좋은 전시’ 사이의 간극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화두를 던진다. (특집 주제가 흥미롭다면 8월호를 읽어보는 것을 추천드린다.)


이처럼 예술계에서 계속하여 언급하고 논의되는 대중성이라는 키워드. 하지만 대중을 의식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영역일테고(심지어 예술가 본인 조차도) 그것의 선후관계 또한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창작자로서의 윤종신이 겪은 시행착오가 대중성의 지향에 있었는지 또한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의 놀라운 기능이 의도치 않은 이슈들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만들어 내는 예측 불가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재에는 더욱이 인과관계의 복잡성을 한가지로 이야기하기에는 비약일 가능성이 크다.



(이야기가 산으로 갈까봐 걱정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일어나는 수많은 이슈들을 '복잡계'로 설명하는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하나 추천한다)


대중이 좋아하는 것을 좇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생각'내지 그 둘을 '구분'짓는 것, 나아가 그 두 개의 노선 중 한 가지의 도착점이 ‘망했다’로 귀결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그가 인터뷰에서 사용한 '망했다'라는 말이 무엇을 함축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이 외부에서 바라보는 돈의 상실과 명예의 실추라면 나는 감히 대중성을 지향했다는 것에 대한 가치판단을 그만두기라고 권하고 싶다.


예술성과 대중성의 공존은 불가능한 것일까?
대중의 지향은 상업성을 추구하는 것일까?


어쩌면 대중성이라는 단어와의 불필요한 관계짓기 때문에 의미있는 그 다음 논의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대중이 좋아하는 걸 좇아 했더니 계속 망했다. 사람들 취향에 맞추는 건 '업자(業者)'이고, 내가 좋아하는 걸 던지고 설득하는 게 '아티스트'란 걸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윤종신의 대답 속에는 여윤이 남는 구절 하나가 더 있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설득’하는 과정이 남아있다는 사실.





2탄은 윤종신의 최근 앨범의 타이틀 곡 '좋니'의 역주행, 월간윤종신이라는 플랫폼, 기존 가정과 가설에 대한 재정의 등을 통해 Innovation은 어떻게 이루어 지는지에 대하여 다뤄볼까한다. 관심이 있다면 관련 기사를 먼저 읽어볼 것을 추천드린다.


추가로 첨부파일은 문화예술에서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역설하며 그에 따라 새로운 정책의 도입과 혁신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는 논문이다. 다 읽어볼 시간이 없다면 4페이지  'What Is Innovation?' 부분만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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