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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 Lee Oct 13. 2017

예술경제의 특수성과 예술가의 자기확신성

경제학자이자 화가인 한스애빙의 저서를 읽고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 : 예술경제의 패러독스


그 당시 나의 간지러운 의문 하나를 시원하게 해결해 줄 것이라 믿이며 곧바로 집어든 책.


경제학자이자 화가인 한스애빙은 마치 합의점을 찾을 수 없는 두 세계에 모두 발을 담그고 있는 인물같아 보였다. 그는 책의 제목인 왜 예술가는 가난할까?라는 질문에 수많은 이유들을 제시했다. 그것들을 한가지로 요약한 것이 바로 '예술경제의 특수성'이다. 예술가 이전에 경제학자로서, 학자이기 이전에 화가로서 그는 다양한 시각을 넘나들며 방대한 내용을 이끌어간다.


Why are artists poor?/Abbing, Hans


어쩌면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일지도 모르고 (실제로 그는 예술경제의 특수성 때문에 경제학적 접근방식에는 한계가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주장에는 비논리를 전제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는 비장한 무기가 아닌 가볍지만 묵직한 대화와 에피소드를 가져와 자신의 주장에 근거를 마련한다. 이 책의 번역본이 아닌 원서를 읽어보고 싶은 이유이다. 마침 번역서는 절판되어 구매가 불가능하니 아마존에서 원서를 구입해볼까 한다. 번역서 325페이지에 그는 예술경제의 특수성을 21가지로 정리했다. 꽤나 흥미로우니 먼저 함께 읽어보자.







p. 325

<예술경제의 특수성>


예술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가 비대칭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하위계층은 상위계층의 예술을 존경하는 반면, 상위계층은 하위계층의 예술을 무시한다.

예술세계는 상업성을 외면함으로써 더 많은 이익을 얻는다.

예술과 예술가는 높은 지위를 누리고 있다.

예술가들은 적극적으로 보상을 추구하지 않는다. 심지어 보상을 거부하기도 한다.

예술시장에서 최상위의 소득수준인 다른 직업군에 비해 엄청나게 높다.

예술가들의 평균 소득수준은 다른 직업군에 비해 훨씬 낮다. 시간당 임금 역시 매우 낮다. 심지어 마이너스 소득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현대의 복지사회에서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낮은 소득수준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예술가를 희망하고 있다. 그만큼 예술은 매력적인 존재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 사람들은 예술분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불확실성과 마주친다. 

예술가들에게 돈이란 목표라기보다 생존한계를 의미한다.

예술가는 내적인 동기를 더 많이 따른다.

예술가는 비금전적인 보상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예술가들은 위험을 감수하는 경향이 더욱 강하다.

예술가들은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여러 가지 신화들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잘못된 인식은 더욱 더 확산된다.

다른 직업에 비해, 예술가들이 부유한 가정환경 출신인 경우가 더 많다.

빈곤은 예술세계의 구조적인 현상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정책들은 효과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내적 지원 역시 예술세계의 예외적인 특성이다. 예술가들은 예술과 관련 없는 일을 통해 작품 활동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보전한다.

다른 직업과는 달리, 예술세계는 지식체계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지 않는다. 즉, 모든 사람들은 예술과 관련된 지식과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다른 직업과는 달리, 예술에는 공식적인 정원제한 제도가 없다. 자격증이 없어도 누구나 예술세계에 들어올 수 있다.

예술세계는 비공식적인 장벽들이 많이 존재한다. 





나는 언제간 위 항목들을 예술가, 기획자를 포함한 많은 예술인들과 같이 읽어보며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 격식없는 편안한 자리에서 말이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브런치 구독자분들은 어떤 생각이 드시는가. 예술가들이 정말 부유한 가정환경의 출신인 경우가 많은가? 아닌 사람도 많은데? 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다른 분야에 비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누구나 예술세계로 들어올 수 있다고? 프로페셔널이 인정되는 직군에는 보통 정원이 한정되기 마련이다. 의사, 판사, 변호사와 같은 분야는 그렇다. 예술분야도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프로작가와 아마추어작가라는 흐릿하지만 무언의 경계가 존재하는 듯 하다.


자격증 없음 오지마

하지만 예술가의 프로페셔널리즘을 증명할 수 있는 - 2년제 이상 미술대학교 석사 졸업 혹은 수료생, 국가 공인 전문 예술가 자격증 취득 혹은 개인전시 2회 이상의 경험 - 과 같은 공식적인 기준과 진입장벽은 없다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비공식적인 장벽들은 존재한다는 것에도.



위 항목 중 내가 붉은색으로 표시한 항목들이 있다. 나는 이 문장을 곱씹으며 다른 각도로 접근해보려 한다. 


다른 분야에 비해 사람들은 예술분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불확실성과 마주친다. 

예술가들에게 돈이란 목표라기보다 생존한계를 의미한다.

예술가는 내적인 동기를 더 많이 따른다.

예술가는 비금전적인 보상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예술가들은 위험을 감수하는 경향이 더욱 강하다.


나는 그 어떤 분야의 종사자들보다 예술가들에게서 강한 자기확신성을 느껴왔다.  단 한번도 '부모님이 원하셔서 억지로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예술가를 만난적이 없다. 그러나 부모님의 뜻에 따라 공무원이 되고, 의사가 되고, 교수가 되는 사람들은 많이 보았다. 마지못해 예술을 하고 있는 이들이 극히 적다는 것은 한동안 나에게 충격적이었다. 회사가 즐비한 강남과 광화문 한복판에만 가도 죽도록 하기 싫은 출근과 노잼, 노관심 업무에 치여 금방이라도 퇴사를 외칠 것만 같은 이들이 많다는 것도 말이다. 예술은 나의 또 다른 꿈을 향한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라는 점은 예술계에 있는 수많은 이들은 어쩌면 다른 차원에 서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일테면 예술가는 이미 덕업일치를 이루었기에 그들이 고민하고 번뇌하는 지점 또한 다른 차원의 문제일수도 있다는 것.




혼자 전시를 보러 다니다가, 우연히 전시장에 와계신 작가님을 만나곤 한다.


갤러리에서 우연히 만난 작가님이 한 작품에 오래 머물고 있는 내게 와서,

"아 .. 사실 이 작품은 이번 전시에 디피할까 말까 고민을 했는데.." 혹은

"뭐 저야 작업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으니까요." 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자신의 높은 기준에 미치지 못한 특정 작품에 대한 아쉬움이지 작업 자체에 대한 회의감은 아닐 것이다. 또한 작업 외에 할 게 없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예술에 대한 자신있음의 다른 표현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작업에 관하여 해당 작업의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그 작업을 더 좋아하게 된 경험이 매우 많다. 그것은 예술가들이 보여주는 작업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열정이 작품 그 자체보다 더 큰 아우라를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예술가들은 가끔은 수줍고 때로는 지나치게 겸손하여, 자존감이 낮거나 자신감이 없어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자신의 내면 깊숙하게 자리잡은 예술에 대한 자신감을 나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예술은 정말 신기한 세상이야! 그치?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적어도 예술세계로부터 저만치 떨어진 외부인들에게는 예술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해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위험으로 가득찬 예술 세계로의 진입이 마치 예술가들이 금전적인 보상의 적음마저 감수했다는 의미로 오판하기 쉽다. 하지만 환경의 불확실성에도 예술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강한 확신성을 방증하는 것이다. 특수함은 사실 이것 하나 뿐이다. 



예술가는 왜 가난한가와 예술을 왜 지원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은 둘 다 예술경제의 특수성으로 귀결된다. 예술경제의 특수성은 예술지원을 위한 정당성에 대한 근거를 마련해준다. 즉 예술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하여 예술의 만성 적자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럼에도 지원해야 하는 이유이다. 초기 문화경제학자들이 정부의 예술 지원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예술이 가지는 가치를 객관적인 수치로 입증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와 주장은 이내 타 분야 학자들의 더 강력에 수치로 쉽게 무너졌다. 가령 특정 지역의 일자리 창출, 지역 인지도 제고, 교육적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문화센터를 설립하자는 주장에 예술이 가지는 가치의 정량적인 지표들이 나선다면 어떨까. 사실 일자리 창출에는 병원이, 인지도 제고에는 대학이, 교육적 만족도에는 도서관이 더 강력한 수치를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예술의 정당성에 대한 근거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책은 언제나 한가지 궁금증에 해답을 주지만 책을 덮고나면 열 개의 의문이 생겨나 책을 읽기 전보다 더 찜찜해진다. 번져가는 의구심으로 인한 의문들은 한 동안 나의 생각거리가 될테고 언젠가 어디선가 어렴풋한 해답이라도 찾게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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