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칠 수 있어야 진짜 공부
전편에서 소개했듯이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학생들의 학년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리고 과목별 담당 선생님도 없다. 선생님이 여러 분 계시지만 선생님들은 특정 과목을 가르치는 국한적인 역할을 하신다기보다 코디네이터로서 학교 전반적인 생활을 조율해 주는 역할을 담당하신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학년도 없고, 과목별 담당 선생님도 없는 학교에서 아이들은 과연 어떻게 공부를 할까. 수학의 경우 학생 각자 내용을 받아들이는 역량과 속도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개별 수준에 맞춰 학습한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스스로 정한 매일의 목표량과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문제가 없는지 체크해 주시고, 반복적으로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에 대해서만 추가 설명을 해주신다. 영어는 본인의 실력에 의거하여 단어 모둠, 문장 모둠, 프리토킹 모둠 등으로 나눠서 공부한다. 초등학교 5학년 연령이 되면 사회과목과 과학과목에 대해 직접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 스스로가 선생님이 되어 동생들에게 강의를 해준다. 즉 매일매일 발표자가 되는 것이다. 오늘은 이 발표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효과는 어떤지 나눠보려고 한다.
발표수업을 하는 아이들은 매일 저녁 EBS의 사회 혹은 과학 강의를 듣고 그날의 강의 내용을 요약해서 피피티로 정리한다. 그다음 날 선생님은 해당 내용을 발표할 학생을 랜덤으로 선정하고, 선정된 학생은 5분-10분 내로 친구들과 동생들에게 본인이 준비한 내용을 설명해 준다. 학생들 모두 다 같은 강의를 듣고 내용을 정리했기 때문에 발표자가 발표를 하면서 놓친 부분 혹은 부족한 부분은 서로 피드백을 준다. 그러면서 하나의 완벽한 강의를 함께 만들어간다. 그리고 발표자 본인은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발표를 했는지, 그리고 직접 수업을 해 본 다음 본인 수업에 대한 성찰의 글도 꼭 남긴다. 그러면서 스스로 부족한 점은 보완하고, 잘 한 점은 앞으로 더 발전시켜 나간다.
처음에는 발표수업이 너무 어색하고 부담스럽고 어려워서 우리 아이들도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했다. 특히 둘째의 경우 부끄러움이 많고 말주변도 없으며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공개된 자리에서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말하는 것을 유독 더 어려워했다. 잘하지 못할까 봐, 실수할까 봐 너무 걱정되고 떨린다고 했다. 둘째의 그런 성향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처음 발표 수업을 하기 전에 미리 가족들 앞에서 연습을 해보라고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대로 둘째는 두어 마디를 채 하지도 못한 채 얼음이 되어 말을 이어가지 못했고 결국 울음을 터뜨려 준비한 내용을 전혀 소화하지 못했다. 청중의 집중된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며 본인 스스로도 백 프로 숙지하지 못한 내용을 쉬운 언어로 설명해야 하는 일련의 과정이 큰 부담으로 다가와 마음을 짓눌러 버린 것이다. 울음을 진정시키고 둘째가 준비한 피피티 내용을 가족이 함께 짚어나갔다. 예상한 대로 수박 겉핥기식으로 EBS 강의를 그대로 따 왔을 뿐 본인의 것으로 소화해내지 못한 상태였다. 이해하지 못한 단어들도 많았고, 강의의 흐름을 관통하는 주제도 알지 못했다. 차근차근 내용을 같이 이해해 보고 중요한 부분이 무엇인지도 함께 알아보았다. 그리고 두 번 세 번 더 연습해 보았다. 물론 첫술에 배 부를 수 없는 일, 그 다음날 발표는 보기 좋게 망쳤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부담감을 이겨내는 경험들이 하나 둘 쌓이면서 생각보다 빨리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지금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수업을 준비하는 지경까지 왔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일단 가르치는 내용을 나 스스로가 완벽히 알아야 하고, 그것을 적절한 언어와 제스처를 사용하여 전달할 수 있어야 하며, 단순 전달이 아니라 배우는 이의 수준에 따라 전달하는 형태도 달라져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보면 '제대로' 가르친다는 것은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내용을 내가 정말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들었는지 판단하는 기준은 아마도 내가 아는 내용을 다른 이에게 정확하고 쉽게 전달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보통의 경우 아이들은 수업과 독서를 통해 새로운 내용을 배우게 된다. 더 나아가 이와 관련된 문제를 풀어보는 방식으로 내가 새롭게 접한 내용에 대해 제대로 이해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본인 스스로 적당히 안다고 착각하거나 알았다고 자신을 속이고 넘어간다. 실제로 틀린 문제를 보고도 '아, 나 이 숫자를 잘못 봤네, 잘못 보지 않았으면 맞은 거니까 난 틀리지 않았어.'라며 한쪽 눈을 감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남을 가르칠 때는 내가 완벽히 알아야 한다. 하나만 알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내용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명확하게 알아야 하고,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정해진 시간에 청자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조리 있게 설명을 해야 한다. 시간이 짧으면 핵심 내용을 추려서 포인트만 전달할 줄 알아야 하고, 주어진 시간이 길면 지루하지 않도록 재밌는 예시도 넣어서 설명해야 한다. 청자의 수준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도 달라야 한다. 기본 지식이 있는 대상인지 아니면 완전 백지 수준인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단시간에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서지고 깨지며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봐야 종합적으로 생기는 역량인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은 이런 훈련을 통해 수업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더라도 항상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머릿속에서 정리해서 중언부언하지 않고 조리 있게 설명하려는 습관이 생겼다. 어려운 내용을 쉽고 재밌게 설명할 줄 아는 능력. 너무 소중하지 아니한가.
내가 배운 내용을 다른 이에게 가르쳐주기. 진짜로 배웠는지, 내 것이 되었는지 확인해 보는 가장 정확한 수단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