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자 영포자 없는 학교
제도권에 있는 일반 학교와 비교했을 때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세 가지가 없다. 첫 번째는 학년 구분이 없다. 보통의 학교는 연령별로 학년을 나누고, 학년별로 아이들을 묶어서 교육을 하지만 우리 학교는 그런 구분을 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정해진 커리큘럼이 없다. 아주 큰 틀의 교육 방향성은 뚜렷하지만 무엇을 배울지는 그때 그때 다르다. 세 번째는 정해진 교재가 없다. 주간 혹은 월간 교육 주제가 정해지면 그 주제를 공부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학습 교재와 도구가 된다.
학교에 있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세 가지가 없는 대신 이곳은 아이들의 수준별로 모둠을 구성하여 수업이 진행된다. 인간은 독립적인 개체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 다 다르다. 외모, 성격, 성향, 지능 발달 수준, 신체 성장 속도 등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다. 그러나 단지 태어난 년도가 같다고 같은 학년 같은 반으로 묶여서 같은 시간에 같은 내용을 배우라고 하는 것은 행정적 편의성이 크게 고려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것을 똑같이 가르쳐도 개개인마다 이해하는 속도가 다르고 받아들이는 깊이가 다르다. 어떤 아이들은 듣자마자 이해하는 반면, 또 어떤 아이들은 여러 번 반복해야 하고 천천히 기다려줘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아이들마다의 다름, 즉 다양성을 존중하기 어려운 교육을 하기 때문에 정해진 속도와 수준을 쫓아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기게 된다. 이것이 바로 소위 말하는 '수포자', '영포자'들의 탄생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학년 구분이 없다. 과목별로 공부하는 내용에 따라 난이도와 진도가 다르기 때문에 각자 자기 수준에 맞는 모둠에 들어가서 수업을 듣고 과제를 수행하면 된다. 본인이 어느 모둠에 들어갈지도 아이들 스스로 결정한다. 모둠을 선택하는 기준도 참 흥미롭다. 얼핏 본인의 실력만이 기준이 될 것 같지만, 실력은 모둠 선택의 수많은 기준 중 하나일 뿐, 아이들은 생각보다 여러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기가 막히게 본인에게 가장 적합한 모둠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우리 첫째의 경우 도전적이고 진취적이며 소위말해 살짝 '나대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어려운 과제가 주어져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잘하지 못해도 '뭐 어때' 식의 반응을 보이며 이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본인 수준 보다 더 높은 모둠에 속해서 마치 '도장 깨기' 게임을 하듯 과제를 수행한다.
반면 둘째는 정해진 틀 안에서 규칙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 남의 이목을 신경 쓰는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본인에게 주어진 과제를 스스로 판단하기에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면 매우 스트레스를 받아하고 자존감에 상처를 받는다. 그래서 둘째는 늘 자신이 그 안에 잘 해낼 수 있는 모둠에 들어가서 과제를 수행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스스로를 잘 안다. 물론 아직 미성숙하게 때문에 여러 구멍들이 보이긴 하지만, 그때는 또 선생님들이 적절한 타이밍에 구멍을 막아주시면서 상황 조율을 해주신다. 본인 성향과 수준에 맞는 모둠 안에서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학습하다 보니 당연히 '수포자', '영포자'가 될 수 없다.
수학의 경우 특별히 어려워하는 내용이 나오면 몇 번이고 시간을 가지고 다시 공부하고 다시 풀어본다. 어려운 문제가 나와서 막히면 답이 나올 때까지 몇 날 며칠 한 문제만 붙잡고 있는 경우도 있다. 진도와 속도에 쫓기지 않다 보니 본인만의 페이스에 맞춰 새로운 내용을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정해진 양을 정해진 시간에 무조건 완수해야 하는 Top-down 식 교육이 아니므로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하는 자기주도 학습의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베였다.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니고, 자발적으로 책상 앞에 앉아 있는다. 우리 부부가 아이들에게 하는 잔소리는 '제발 빨리 자자' 밖에 없다.
아이들은 정말 다 다르다. 습득 속도가 빠르다고 무조건 좋아할 일도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런 아이들은 싫증도 빨리 내기 때문이다. 반면 습득 속도가 느리다고 걱정할 일도 아니다. 천천히 자기만의 속도로 더 공고히 알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수학을 재밌어 할 수도 있고 철학에 관심을 보일 수도 있다. 또 어떤 특정한 과목에 관심을 가지기보다 학습 전반적인 것을 고루 잘할 수도 있다(반대로 못할 수도 있다). 물론 아무것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특별한 재능이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관찰하고 아이의 성향과 관심을 알아가며 기다려주는 일 아닐까 싶다. 우리 부부는 절대 아이들을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아이 저마다 훌륭한 원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직 부모 품 안에 있을 때 부모가 조력자로서 그 원석을 잘 다듬어 보석이 되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두어도 빛날 아이들이 더 반짝반짝 빛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