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만의 전국일주

지키지 못한 약속

by 다정한 지혜씨

십 년 전, 여행사를 하는 언니를 통해 할머니와 버스여행을 했다.

그때 할머니 나이가 여든둘, 내 나이는 스물아홉이었다.


할머니는 여행 첫날부터 날아다니셨다. 이십 대인 나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산을 오르고, 멀미가 솟구치는 배도 탔다. 버스는 우리를 데리고 전국을 순회했다. 2박 3일의 빡빡한 스케줄에 힘이 드셨을 텐데도 할머니는 끝내 기운을 잃지 않으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할머니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다.

나에게 할머니의 눈물은 잦아도 면역이 생기지 않는 유일한 것이었다. 할머니가 울면 나도 눈물이 났다.

"왜 울어? 할머니?"

"너무 좋아서, 집에 가기 싫어서 눈물이 나네."

"그렇다고 애기같이 울면 어떡해? 다음에 또 오면 되니깐 울지 마."

할머니의 뺨을 타고 내리는 눈물을 닦으니 내 뺨에 흘렀던 눈물도 같이 닦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 이후에도 몇 번 여행을 가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다. 할머니는 내심 지난 여행 이야기를 꺼내며 또 다른 여행을 기대하셨지만 매번 시간에 쫓기는 나는 그 바람을 쉬이 들어드릴 수 없었다.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은 빠르게 흘렀다. 하루하루는 느리지만 몇 년은 그렇게 순식간에 지나갔다.

할머니 나이가 아흔을 넘겼을 때 알았다.

'이제는 미루고 미뤘던 여행을 갈 수가 없겠구나.'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았고, 할머니의 얼굴에는 주름의 수를 늘리고 머릿속에는 주름의 수를 지워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일주일에 한 번 할머니를 만나 고기를 사드리거나 목욕탕을 가거나 계절마다 제자리에 피어있는 꽃을 구경하러 가는 것이었다. 인생은 긴 여행이라는데 여행 끝에 서있는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실까 궁금하다. 엊그제 요양원에서 봤던 할머니 눈은 어쩐지 텅 비어 있는 듯 보였다. 나를 알아보셨을 때 반짝임은 아주 찰나에 머무른다. 이젠 더 이상 눈물을 닦아주지 않는 주름진 손이 야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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