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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Mar 29. 2017

별안간 어머님

D+115,  데일리 바틀 명상, 오늘도 수고했어. 그래도 치킨 먹었잖아

육아처럼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 또 있을까.

내가 최근 세운 계획은 낮동안의 텀에는 (텀이 생긴다면....) 육아 관련 책을 읽고, 육아와 집안일 퇴근이 끝나는 10시, 11시 이후에는 컬러테라피와 마음챙김 명상 관련 책을 읽고 콘텐츠를 짜는 것이다.

책 읽는다니 참 팔자 좋아보이겠지만, 사실상 낮동안에는 책을 거실에 들고 나왔다가 춘이가 자는 안방에 들고 갔다가 이리 저리 이동하다 끝나게 된다.  한 서너장 읽으면 그날은 잘 풀리는 날이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춘이가 잠시 자는 틈들을 타 첫번째 타임에는 어제 미처 못한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 이불털기 기능을 이용해 털고, 일어나서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급하게 생식을 갈아 입에 넣는다.

으앙, 춘이가 깼다.

춘이가 깨어 있을땐 소리가 큰 청소기를 돌린다. 춘이가 거실에 있기 때문에 안방을 먼저 잽싸게 돌린다. 그 사이에 이불털기가 다됐다고 세탁기가 울어댄다. 그놈의 미세먼지가 안들어오도록 잽싸게 세탁실의 창문을 열고 이불을 꺼내 춘이 자는 안방에 가지런히 깐다. 열심히 낑낑 거리며 뒤집기를 하는 춘이를 잽싸게 방금 깐 안방 이불로 옮겨놓고 거실을 청소한다. 그 사이 춘이가 이리 와달라 옹알이를 랩처럼 해댄다. 나는 몸은 계속 청소 중이지만 입은 응 그래 갈께 기둘려 답해준다. 공기 청정기를 거실로 옮겨 방금 환기...인지 미세먼지 입장이요를 한건지 암튼 공기를 순환시킨다. 안방에서 춘이 밥을 주고 뒤집기를 몇십번을 하는 춘이를 다시 되돌려 주기를 무한 반복하다 마지막 뒤집기 후 지쳐 잠든 춘이에게 이불을 덮어준다.

누군가에게 카톡이 온다. 난 이 시간에 밥을 먹어야 하는데 외출하지 않으면 말할 상대가 없기 때문에 잠시 카톡대화로 나에게 사회적 관계가 있음을 아직 확인하고는 얼른 춘이가 깰까 늦은 점심을 먹는다.

두번째 으앙,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놀아주고 춘이와 내가 같이 꺄르륵 행복한 시간이 아주 잠시. 몸을 비틀며 일으켜 안아 나가달라는 신호를 보내자 내 무릎에서 뚝뚝 소리가 나는 것을 느끼며 올려 안아 거울도 보여줬다가 부엌도 구경시켜줬다가 창밖도 봤다가..또 춘이가 몸을 비틀자 내려놓고 혼자 세계를 탐구할 시간을 준다. 그 사이 육아책을 펴든다. 두장정도 읽고는 맞다, 빨래 개야지.

쉬리릭 빨래들을 거실로 가져와 춘이 옆에서 옹알이에 답하며 빨래를 갠다. 몸은 쉴새없이 왔다갔다, 입도 쉴새없이 춘이에게 대꾸를 한다. 아니,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일수도..

냉장고에 딸기가 상할까 간만에 평일 낮에 딸기를 꺼내 씻어 접시에 담자 춘이가 나를 호출한다. 아기띠로 앞으로 보기를 해서 안고서 딸기에 요플레를 부어 쇼파로 가져와 먹는다. 춘이가 다시 일어나라 한다. 이제는 못안아요.. 내려놓고 다시 혼자 탐구할 시간 주기. 이내 또 뒤집고 낑낑 나는 다시 제대로 눕혀주고 춘이는 다시 뒤집고 힘들지만 그 모습이 귀여워 한동안 쳐다본다.

아까 읽은 책에서 잠을 7시~8시에 재우는 것이 좋다고 해서 오늘 과감히 수면 시간을 앞댕기기로 한다. 수유를 하고 소화를 시킨 후 7시 반쯤 목욕을 시킨 후 마지막 수유를 좀 더 하고나면 난 퇴근이겠지? 그래 그 시간쯤 저녁을 먹고 오늘은 샤워를 좀 하자. 화장실 앞에 갈아입을 옷도 깔아놓는다. 혹시 저녁 전이라 마지막 수유시 춘이밥이 마련 안될 수 있으니 낮에 트라이 했던 젖병을 잽싸게 삶아놓는다.

자 이제 조금만 있으면 나도 퇴근, 춘이도 행복한 꿈나라다.

목욕을 시키고 잘 자라고 문센!에서 배운 마사지도 정성스럽게 하고 마지막 수유...가 모잘라서 분유도 겨우 달래가면 먹이고 트림을 팡팡 시킨 후 눕혔다.


하.지.만.

춘이가 어인 일인지 자꾸 깬다. 그것도 깨서 막 운다. 여태 수면교육 하나는 제대로 됐어 했는데 요즘 간헐적으로 깊은 잠으로 가기 전 울더니 오늘은 아예 작정하고 운다. 결국 안아 올린다. 그래도 안달래진다. 점점 나는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어디 아픈가? 분유통에 균이 들어갔나? 이런적이 신생아 시절 빼고 없었는데 너무 당황스럽다. 엎어져도 눕혀보고 밥도 다시 줘보고 기저귀도 확인해보지만 왜 우는지 모르겠다. 근데 문제는 내가 너무 배가 고파 당이 떨어지는 것....다행히 내 당이 좀 남아있을때쯤 춘이가 다시 잠든다. 역시 효자...^^


시계를 보니 밤 10시다.


난 분명 7시반부터 잘 준비를 마쳐놨는데 10시까지 계획한 샤워는 커녕 밥도 못먹고 있었다.

이런 적이 살면서 많지는 않았는데 오늘 치킨으로 한번 나를 달래봤다. 며칠 전부터 생각났는데 브라질 닭이 어쩌고 해서 안먹고 있다가 오늘은 발암물질이든 뭐든 일단 입에 넣자 하고 시켰다.

아저씨가 벨을 누르면 최대한 바로 문을 열 생각에 두근두근하면서 기다린다.


춘이는 확실히 잠든것 같았고 무사히 치킨 먹기는 끝이 났다.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어제 스튜디오에서 데려온 오라소마 컬러바틀로 명상을 했다.

내가 세운 의도는, "수고했어 오늘도. 내가 토닥토닥해줄께"

바틀을 들고 눈을 감자마자 눈물이 분수토처럼 흘렀다.

한참을 흘려보내고, 새로운 에너지로 내 몸을 다시 채웠다.


명상 직전 이런 생각이 올라오려고 했다.

나는 분명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제도 춘이를 데리고 스튜디오에 가서 수업을 들었고 거기서 상담하는 3시간동안 남편이 그쪽으로 와 춘이를 봐줬다. 난 너무나 고마웠고 이렇게 나의 앞날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와서도 목욕을 하고 애기를 재우고 혹시 나땜에 춘이가 고생하는가 싶어 잠시 미안해도 했다가 죄책감은 들 필요가 없다 생각하고는 화이팅을 하고 또 나의 일 관련 다큐를 보고 인터넷 써치를 하고, 사실 더 조사하고 아이디어를 도출 하고 싶었지만 오늘의 육아출근을 위해 새벽이 더 깊어지기 전 잠을 청했다.

근데 왜 이런 나에게는 아무도 고마워 하지 않는거지? 나의 취미로만 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같이 잘살기 위해 나도 이렇게 출산 100일밖에 안됐는데 노력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주말에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데, 왜 나에게는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지? 먹고 사는것이 젤 중요하니까 그럴려면 돈이 젤 중요한데 그 돈을 못가져와서? 나도 지금 당장이라도 벌라면 벌 수 있는데?

지금 카톡에선 조리원동기들이 낼 간만에 먹고 싶은것좀 편히 먹어보자며 애기 데리고 샤브샤브집을 갈지 계절밥상 부페를 도전해볼지 갑론을박 중인것 같다. 출산 약 100일차인 우리에게는 이것이 꽤나 큰 모험이기에 얼른 이 기록을 마치고 그 대화에 동참하고 싶다.


별안간 변해도 너무 변해버린 내 삶이 갑자기 지금 이 순간 생경하게 느껴져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생각나, 그에 대한 리뷰를 찾아보았다.

근데 오늘은 무언가를 분석적으로 생각하기엔 몸과 마음이 피곤하다. 그래서 바틀을 집어들고 명상을 했다.


명상을 하며, 누구에게도 어떤 것도 바라지 말고 내가 원하는 것을 내 스스로 해주자.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나를 다독거렸다. 그럴수록 터콰이즈빛이 강렬히 내 몸을 감쌌다. 다시금 이 상황을 현명히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얻고, 그 답을 이미 알고 있는 나는 고요해진 마음으로 눈을 뜨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수고했다, 오늘도. 이런날도 있고 저런날도 있는거야. 알지?

내 삶의 주인은 오직 나. 모든 건 내가 만들어 가는거야.

그리고 오늘 치킨 먹었잖아.^^^^^^


엎드려놓은 춘이가 잘 자고 있는지 들어가서 한번 살펴봐야겠다.


집으로 가져온 첫번째 나의 바틀. 이름은 The birth of Venus이다. 이름이 참 맘에 든다.
요즘 뒤집기 무한반복 중인 춘님. 뒤집어서 보는 세상은 얼마나 새로울까. 근데 운동 너무 빡쎄게 하는 거 아니니?ㅋㅋ
컬러테라피 동료가 내가 떠오른다며 보내준 사진 2장. 사진들이 너무 좋다. 이런 선물 너무 고맙고 힘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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