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품녀 딱지 벗어나기
오늘은 무엇을 반품할지 고민하던 끝에 평소에 사놓고 잘 쓰지 않던 제품들을 모았다. 반품 기한이 넘긴 물건들은 당근을 하거나 중고나라에 올렸다. 많이 사용할 거라 생각했던 물건들은 이내 방구석에 방치되어 먼지만 쌓여 가고 있었다. 언제든 써보고 30일 이내 반품할 수 있는 쿠팡의 멤버십은 단연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사고 마음에 안 들면 반품해 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 때문에 소비를 멈출 수 없었다. 소비가 습관이 되어버린 지금. 어떻게 하면 소비를 멈출 수 있는지 고민에 빠졌다.
소비 중독의 시작은 ‘아이쇼핑‘으로부터였다. 누군가를 만날 때면 어김없이 찾게 되는 곳은 쇼핑센터였다. 쇼핑센터에서 식사도 해결하고 엔터테인먼트도 즐길 수 있고 더운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장점과 달리 늘 난 답답했다. 건물 안에 갇혀 쳇바퀴를 도는 듯한 한정된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깝게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밖에 나가 바람을 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찾게 되는 곳이 있다면 근처 공원이었다. 공원에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때면 작게나마 답답했던 몸과 마음이 위로를 받았다. 따사로운 햇빛, 일렁이는 물결을 보면서 그동안 잊고 지내던 바깥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곤 한다. 무엇보다 소비에 강요를 받지 않아서 좋았다. 이전에 코엑스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앉을자리가 찾기 힘들었다. 오직 앉아서 쉴 수 있는 곳은 매장 내 자리였다. 나 하나 맘 편히 앉을자리는 그저 매장 내 자리가 전부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더는 쇼핑센터에 오기가 싫었다. 그 뒤로는 더는 코엑스를 찾지 않게 되었다. 소비를 강요받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이제는 직접 오프라인 매장을 가지 않더라도 온라인에서 누구나 쉽게 물건을 사고팔고 하는 편리함을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아이폰을 쓴 뒤로는 ‘앱 결제’에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날이 있었다. 이외에도 얼마 전 애플 매장을 찾게 된 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폰 16 사전예약 판매로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보였다. 오후 9시였다. 너도나도 아이폰을 사기 위해 정신이 없었을 때, 매장 직원에게 아이패드 구매가 가능하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은 ‘안된다’는 말뿐이었다. 직원에 태도에 당황하기도 하였다. 무조건 안된다고 단호히 말을 끊는 직원의 태도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난생처음 소비에 거절을 당했을 때 마치 밥맛이 뚝 떨어지는 느낌을 받은 것처럼 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어떤 경우에 어떻게 하면 소비를 하지 않을 수 있는지 리스트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1. 퇴짜 맞기
2. 낙인찍히기 또는 잔소리 듣기
3. 입출금 거래 내역 알림을 통한 통장잔고 확인하기
4. 반품 포장하면서 귀차니즘 느껴보기
5. 엑셀 장부 쓰기
6. 다른 곳에 집중해 보기
7. 쇼핑센터 말고 다른 곳 가보기_공원 등
8. 핸드폰 보는 시간 줄이기 _방해금지 모드
9. 신용카드&나중결제 혜택 포기하기
10. 만족 지연시키기
그중에서도 그나마 효과를 보았던 것이 있다면 2번과 4번, 6번이었다. 특히 4번에서 큰 효과를 느꼈다. 반품을 하는 과정에서 포장하고 사람을 만나 거래하고 하는 모든 것들에는 ‘시간’이라는 비용이 추가로 들었다. 반품으로 인해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스스로에게 한심함을 느꼈다. 그도 그런 것이 결국에는 2번처럼 남자친구로부터 ‘반품녀‘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 딱지를 벗어나고 싶었다. 아침에도 일어나 반품 포장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이러한 습관의 고리를 기필코 끊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신용카드를 제일 먼저 해지했다. 이외에도 쿠팡에서는 선 구매 후 ‘나중결제’라는 시스템이 있었는데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당장 중지 시켜달라고 했다. 소비를 어렵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귀찮아서 사는 일은 줄어들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또 고민하던 끝에 엑셀 장부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잘 작성했는데 하루이틀 멀다 하고 또 작성을 멈췄다. 그래서 현금챌린지를 하였는데, 현금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가게들이 많아 결국 현금 인출을 포기했다.
반품녀 탈출을 하고 싶었다. 아직 확실한 방법은 찾지 못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싶다. 미니멀리즘을 도전해보고자 했다. 모든 것을 비워내 보기로 말이다. 쉽지 않지만 하나씩 없애보기로 말이다. 돈을 버는 것보다 소비가 더없이 쉬워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 지연‘시켜보는 것이다. 만족을 지연시키는 일에도 훈련이 필요함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느꼈다. 가족과 함께 쇼핑을 하러 갈 적이면 생떼를 부려 결국에는 원하는 것을 손에 얻고 말았는데, 그것이 결국에는 나에게는 부작용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만족을 지연시키는 방법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도 부모가 되면 아이가 원하는 데로 사주는 것이 아닌 만족을 지연시키는 방법에 대해 제일 먼저 일러주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성인이 된 지금은 네 스스로를 잘 훈련시켜 소비의 늪으로부터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쿠팡이 있기 전 홈쇼핑에서 카드 한도가 나올 때까지 쇼핑 중독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비싼 명품이 아니더라도 소비에 쉽게 젖어든 나를 구출해 내기 위한 작전이 필요함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느꼈던 일주일이었다.
“지효님한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좋아요! 항상 필요한 게 언제든 있어 보이셨거든요!”
동료한테 처음으로 빌려달라고 말했는데, 듣게 된 이 말 앞에서 내가 얼마나 소비에 쪄들었는지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킥을 맞게 된 일이 벌어졌는데…
“말해 뭐 해, 또 팔고 또 살 텐데…”
ISTJ의 정확하고 직설적인 분석을 통해 얻게 된 ‘반품녀‘라는 별명을 하루빨리 탈출하는 그날 다시 한번 그 방법을 공유해보고 싶다.
소비의 늪으로부터 벗어나는 그날까지!
나의 반품녀 탈출은 시작에 불과하다.
#반품녀 #쇼핑중독 #나중결제 #소비의 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