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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o Sep 15. 2024

9월의 어느 옥상

사랑의 모양

거웠던 여름과 달리 나의 감정은 온통 냉랭함뿐이었다. 인간관계에서 느낀 ‘여름의 냉랭함’은 나를 더없이 외롭고 아프게 했다. 어릴 때는 이런 감정을 느낄 틈도 없이 그저 나만 생각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 그녀가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추석, 설날 명절이 다가올 때면 더없이 그녀가 그립다.


이십여 년 전 9월 어느 추석,

그녀의 손을 옥상에 올라가 동생과 함께 커다랗고 노란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던 지난날이 가끔 불쑥 떠오른다. 그때는 몰랐다. 그날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이제 그날의 따뜻했던 날은 추억이 되었다. 보름달을 보며 내가 빌었던 소원은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셋이서 나란히 서서 보름달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좋았다. 유난히도 밝았던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그대로 옥상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잊혀간 수많은 기억 중에 이 순간의 기억을 잊지 못하는 순간은 그녀와 함께 있었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늘 올라갔던 옥상이었지만 함께 옥상에 올라가 손을 마주 잡고 희망찬 노란 보름달을 바보며 밝게 미소 지었던 그 순간이 요즘 따라 더없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릴 때와는 다른 사랑의 모양을 보고 느끼게 되었다. 어릴 때 내가 느꼈던 사랑의 모양은 정해진 모양이 아닌 지점토처럼 네가 만지는 데로 자유자재로 변하는 유연함이었다면 성인이 되어 네가 느끼고 받게 된 사랑의 모양은 정해진 틀과 같았다. 그것은 마치 세상이 나에게 기대하는 모양대로 나를 맞춰나가기 위한 모양으로 만들어져 나가는 듯한 인위적인 느낌이 자주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요즘 드는 생각이 있다면 ’ 나에게 기대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다. 이런저런 연유로 나에게 기대를 가졌던 사람들이 실망하고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더불어 마음 한편이 불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한 그들의 사랑의 모양에 어긋난 나를 바라보았을 때 네 스스로도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고, 나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다른 시선으로 나를 돌아보게 하는 일이 있었다. 가끔 마음이 힘들고 울적할 때마다 법륜스님의 영상을 보곤 하는데, 그중에서도 우연히 보게 된 영상 속 스님의 말 한마디가 경종을 울렸다.


왜, 모든 사람들이 본인을 사랑해야 하나요?
싫어하고 좋아하고는 각자의 자유가 있지 않나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생각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얻게 되었다. 그들이 날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그들의 자유임을. 내가 그들의 사랑의 모양에 맞춰 노력하려는 순간 난 그들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다못해 나의 가족도 가끔은 싫고 좋을 때가 있다. 남이면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나를 비로소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세상에는 없지만 가끔 그녀가 더없이 그리워지는 날이 있다. 사람들로부터 받게 된 아픈 상처들로 홀로 눈물을 훔치는 날이다. 나 역시도 사람들에게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가 좌절되었을 때 나 역시도 실망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더없이 그녀가 그리웠다. 그녀는 날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사랑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요즘. 어떻게 하면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지난날 아르바이트로 골프장에서 데스크를 보면서 사장님과 함께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장님께서는 자녀에게 바라는 것이 없고,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것이 사장님의 자녀 사랑법이었다.


‘기대를 하지 않는 것’

그렇다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성인이 되면 지극히 이익을 따지게 되는 이유는 뭘까.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익과 손실을 따져가며 사람을 사귀고 헤어짐을 겪게 되면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피곤함을 느꼈던 요즘. 친구의 말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무 이유 없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이런 감정은 어릴 때 이후로는 느껴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였는데, 성인이 되어 오랜만에 느껴본 따뜻함에 어찌할 줄 모르는 네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였다. 다른 사람의 사랑의 모양을 논하기 전에 나의 사랑의 모양은 지극히 정해진 틀로서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그 틀에 맞추지 못한 그 기준에 맞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서 나 역시도 실망하고 멀리했던 부끄러운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이번 추석에도 노란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이번 추석에는 보름달을 보면서 무슨 소원을 빌어볼지 고민이 된다. 사랑스러운 그녀는 내 곁에 없지만 대신 지금 내 곁에는 사랑스러운 또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과 함께 보름달을 보며 빌게 된 소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생각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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