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셋째 주 남도여행
삼복더위에 바다처럼 좋은 여행지가 없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뜨거운 무더위를 단숨에 날려주기 때문이다. 바다여행을 결심했다면 마음먹은 김에 좀 더 먼 바다로 가 보는 건 어떨까. 신안 흑산도에서 한참을 더 가야 만날 수 있는 섬이 있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보물섬 홍도다.
7월의 홍도는 원추리의 계절이다. 해마다 이맘때 홍도에서는 원추리축제가 열린다. 홍도에서 피는 원추리는 이름 자체가 ‘홍도원추리’다. 홍도에서 처음 발견된 원추리 품종으로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이다. 홍도에서만 볼 수 있는 ‘홍도원추리’는 삼복더위가 한창인 7월 중순이 제철이다. 홍도원추리는 주로 군락을 이루며 피어있는데 홍도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인 깃대봉을 중심으로 산자락과 능선을 따라서 홍도원추리 꽃밭이 펼쳐져 있다.
꽃이 크고 색이 화려해서 어디서나 눈에 띄는 원추리는 주로 지리산 같은 산지에서 많이 피어있다. 바닷가에 핀 원추리는 흔하지 않은데, 특히 홍도원추리는 바닷바람을 맞고 자라서 그런지 크기와 색이 육지 원추리와는 사뭇 다르다. 일단 꽃의 크기가 작고 색도 노란빛이 많이 도는 주황빛이다. 육지 원추리와 다른 생김새 덕분에 관상 가치가 높은 꽃으로 사랑받고 있다.
홍도원추리는 이름처럼 홍도에서 자생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2003년에 홍도가 특성도서로 지정된 후에 개발제한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섬의 자생식물들이 그대로 보존된 탓에 훼손 없이 멋진 꽃밭을 지킬 수 있었다. 덕분에 후박나무와 당채송화 같은 희귀식물들도 홍도원추리와 함께 군락을 이루며 해마다 고운 꽃망울을 터트린다.
홍도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신비의 섬으로 섬 전체가 천연 보호구역과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홍도(紅島)’라는 이름은 붉은 동백꽃이 섬을 뒤덮고 있어서 해질 녘 노을에 비친 섬이 붉은 옷을 입은 것 같다 하여 ‘홍의도’라고 불리던 것이 이후에 홍도로 바뀌었다.
바위로 만들어진 섬이다 보니 깎아지른 절벽과 기암괴석이 즐비한 해안을 따라 천혜의 비경이 펼쳐져 있다. 수많은 해식 동굴과 크고 작은 바위섬들을 품고 있으며 거친 바닷바람을 온 몸으로 맞은 숲의 나무들이 맑고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홍도를 한 눈에 살펴보고 싶다면 유람선을 타는 것이 좋다. 섬을 한 바퀴 도는 유람선 투어는 ‘홍도 10경’을 모두 볼 수 있어서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홍도 깃대봉을 오르는 트래킹도 좋다. 해발 365m 깃대봉까지 오르는 길은 완만해서 걷기 편하고, 걷는 내내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그림 같은 풍경과 푸른 숲속의 건강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가능하다면 섬에서 숙박하면서 홍도가 자랑하는 노을을 꼭 보고 오는 게 좋다. 섬 전체가 홍갈색을 띤 규암질의 바위섬인데 해질녘에 가장 붉게 물든다. 하늘과 바다에 퍼지던 붉은 빛이 섬까지 하나로 물들이는 모습이 장관이다. 홍도에서 가장 멋진 노을을 볼 수 있는 곳은 몽돌해변으로 오후까지 해변에서 물놀이하다가 노을까지 보고 오면 좋다. 홍도의 바다는 마치 거울 같아서 바람이 없는 날에는 바다 속 10km까지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한데, 바다 밑의 신비로운 풍경을 보기 위해서 스쿠버다이버들이 자주 찾는 다이빙 포인트이기도 하다.
홍도가 지금의 모습을 보존할 수 있었던 건 사람들의 발길이 쉽게 닿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전과 비교해서 뱃길이 많이 편해지긴 했지만 홍도까지 가는 길은 여전히 멀다. 목포에서 흑산도까지 하루 두 번 쾌속선이 운행하는데 목포에서 비금·도초를 지나 흑산도에 잠시 정박했던 배는 다시 홍도까지 더 달려가야 한다. 약 2시간 30분이 걸리는 뱃길이지만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가는 길이 그렇게 지루하거나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홍도는 대표 먹거리라는 게 없을 정도로 바다에서 나오는 모든 게 맛있다. 살이 오르기 시작한 돔부터 우럭·농어까지 싱싱한 자연산 회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 특히 홍도 앞바다에서 작살로 잡아 올린 자연산 전복이 유명한데 바다 속에서 자유롭게 살던 전복이라서 그런지 진짜 손바닥 만한 왕전복이다. 즉석에서 회로 먹어도 비리지 않고 기운이 팍팍 솟는 게 삼복더위 복달임으로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