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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효 작가 Oct 25. 2023

백일홍 피는 담양 명옥헌원림

7월 둘째 주 남도여행

7월이 되자마자 폭염주의보가 발령하는 날이 늘었다. 그렇다고 에어컨 바람만 찾다 보면 냉방병에 걸리기 십상이다. 찜통더위에 머리 지끈거리게 만드는 에어컨 바람이 싫다면 꽃바람 부는 담양으로 떠나 보자. 따가운 햇살을 비집고 담양의 고운 여름 꽃, 백일홍이 얼굴을 드러냈다. 


담양군 고서면에서 광주호를 끼고 가사문학관을 향해 달리다 보면 산덕리 후산마을이 나오는데 그 곳에 백일홍 정원으로 유명한 ‘명옥헌원림’이 있다. 조선 중기, 오희도라는 선비가 터를 잡은 곳으로 아들 오이정이 명옥헌을 짓고 건물 앞뒤에 네모난 연못을 만든 후에 주변으로 배롱나무와 각종 꽃나무를 심어서 멋진 정원을 만들었다. 예부터 배롱나무는 청렴을 상징하는 나무로 서원이나 서당 앞마당에 많이 심었는데 선비들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신념을 굽히게 될지 모를 자신을 미리 경계하느라’ 가까운 곳에 배롱나무를 심고 늘 마음을 다스렸다고 한다. 



< 한여름에 만나는 명옥헌원림 >

국가명승지로 지정된 명옥헌원림은 무려 4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정원으로 정자 건물을 중심으로 배롱나무와 꽃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명옥헌원림’이라고 불린다. 정원 자체가 마을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서 일부러 길을 찾아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시크릿 가든’이다. 아름다운 민간 정원의 백미로 꼽히는 명옥헌은 정자 주변의 배롱나무에 백일홍이 꽃망울을 터트리는 7~9월이면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명옥헌은 조선시대 정자문화의 진수가 모여 있는 담양에서도 소쇄원과 함께 최고의 민간정원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옥구슬이 구르는 것처럼 맑고 영롱하다고 해서 ‘명옥헌’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자연을 벗 삼아 글을 읽거나 제자들을 양성하던 일종의 공부방이었다. 


명옥헌의 가장 큰 매력은 연못과 배롱나무 숲이다. 정자를 중심으로 위·아래 두 곳에 연못을 만들고 그 주변을 빙 둘러서 배롱나무를 심었다. 정자 뒷산에서 내려오는 계곡 물이 위쪽 연못을 채우고 그 물이 다시 아래 연못을 채우도록 설계되어 있다. 특히 연못의 모양이 원형이 아니라 네모난 것이 눈에 띄는데 강진 다산초당 마당에 있는 연못과 같은 모습이다. 백일홍이 피는 한여름에 정자 마루에 앉아 연못을 바라보면 주변의 배롱나무와 물에 비친 배롱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꽃구름을 타고 있는 듯 신비한 매력을 뽐낸다. 


< 명옥헌 정자에서 바라보이는 백일홍 정원 >


명옥헌에 가기 위해서는 후산마을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어서 15분쯤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한참 걷다 보면 갑자기 탁 트인 정원이 펼쳐지는데 시크릿가든이라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백일 동안 피어있는 꽃이 있다면 아마 대박 상품이 될 것이다. 백일 동안 피어있다는 백일홍의 의미는 한번 꽃이 피면 백일을 간다는 것이 아니라 배롱나무 가지마다 맺힌 수천 송이 꽃망울이 백일 동안 피고 진다는 걸 의미한다. 한여름 무더위가 시작되는 7월 초순부터 9월 중순까지 명옥헌원림의 백일홍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는데 배롱나무의 하얀 나무 줄기에 푸른 잎과 다홍빛 꽃잎들이 하늘거리는 모습이 상당히 아름답다. 눈길 닿는 곳마다 멋진 풍경을 담을 수 있지만 최상의 전망 포인트는 명옥헌 툇마루다. 사방으로 트인 문으로 시원한 산바람이 불어오고 연못에 비친 백일홍 자태를 감상하다 보면 무더위로 지친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 든다.  


후산마을에는 명옥헌 배롱나무만큼 유명한 나무가 하나 더 있다. 국가명승으로 지정된 보물 나무로 일명 ‘후산리 은행나무’로 불리는 3백년 된 고목이다. 조선 인조대왕이 왕이 되기 전에 담양의 선비들을 만나러 명옥헌에 왔을 때 말을 매어둔 곳이라고 해서 ‘인조대왕 계마행 나무’로 불리기도 한다. 일단 은행나무가 크고 굵어서 은행잎이 노랗게 물이 드는 가을이면 후산마을 일대가 횃불을 밝힌 것처럼 환해진다.


< 후산리 은행나무 >

후산리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창평 오일장터가 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오일장답게 전통 먹거리가 가득한데 특히 장터 국밥이 유명하다. 돼지 내장과 살코기를 푹 우려낸 육수에 밥을 말아서 끓인 창평국밥은 잡냄새 없이 국물 맛이 진하고 구수하다. 모둠 수육을 얹은 국밥에 창평주조장에서 빚은 막걸리를 곁들이면 든든하게 속을 채울 수 있다. 좀 더 특별한 맛을 원한다면 암뽕순대국밥이나 선지국밥을 선택해도 후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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