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효 작가 Oct 26. 2023

제철 맞은 가을꽃
함평·영광 꽃무릇

9월 셋째 주 남도여행 

세상만사 모든 일이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있다. 과일도 제철에 먹어야 맛난 것처럼 여행도 제철 여행이 있는데 9월 중순에 제철 맞은 가을 꽃밭이 있다. 국화가 늦가을을 대표하는 꽃이라면 9월의 가을꽃은 꽃무릇이다. 이름부터 고운 꽃무릇은 하늘거리는 선홍빛 꽃잎이 화사한 자태를 뽐낸다. 꽃이 시든 후에 잎이 피어나고 잎이 시든 후에 꽃이 피기 때문에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 하여 상사화(相思化)라는 애틋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사실 꽃무릇과 상사화가 다른 꽃이다. 상사화는 주로 지리산에서 자생하는 분홍빛 꽃으로 무더위가 기승인 7~8월에 꽃망울을 터트리지만, 꽃무릇은 추석 무렵에 피는 가을꽃으로 진한 붉은 빛이 특징이다. 제철 맞은 꽃무릇이 피어난 곳은 불갑산을 사이에 둔 함평과 영광이다. 


호남가의 첫 대목에 등장하는 함평천지처럼 함평의 가을은 두루 화평하고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다. 특히 해보면 용천사가 자리한 모악산은 사방이 온통 꽃무릇 천지를 이룬다. 함평 모악산이 품은 꽃무릇공원은 국내 최대의 꽃무릇 자생 군락지로 꽃이 필 때면 산 전체가 마치 다홍색치마를 두른 듯 황홀한 장관이 펼쳐진다. 


< 함평 모악산 용천사 꽃무릇 공원 >

  함평 꽃무릇공원은 우리나라 100경 중 48경에 선정될 만큼 유명한 가을 꽃밭이다. 9월부터 두 달 동안 꽃이 피고 지는데 가장 화려한 시기는 9월 중순경으로 이 시기에 꽃무릇축제가 열린다. 원래 작은 사찰이었던 용천사는 꽃무릇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면서 전국구 스타가 됐다. 용천사 입구부터 시작된 꽃길은 모악산 등산로를 중심으로 화양연화를 이루는데 용천사 건물 뒤쪽부터 야생차밭과 대숲으로 이어진 길이 가장 아름답다. 울창하게 우거진 푸른 숲길에서 만난 꽃무릇은 천상의 화원처럼 신비한 매력을 더해준다. 


함평 모악산과 영광 불갑산은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는 이웃 산이다. 하루 이틀 정도 차이는 있지만 꽃무릇이 피는 시기가 비슷하다. 함평 모악산에서 시작된 꽃무릇의 물결은 산 능선을 타고 영광 불갑산으로 이어지다 불갑사를 만나 멋진 꽃밭을 펼쳐놓는다. 


전남 영광군 불갑면에 위치한 불갑사는 백제 침류왕 때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법성포에 들어와 처음으로 세운 절이다. 9월이면 이 천년고찰도 곱디 고운 꽃무릇으로 뒤덮인다. 불갑사 주차장부터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꽃무릇은 일주문을 지나 사찰 마당가에도 지천으로 핀다. 

함평 용천사에서 꽃무릇축제가 열릴 때 영광 불갑사에서도 꽃무릇축제가 열린다. 용천사 꽃무릇이 울창한 숲속에 자리를 잡았다면 불갑사 꽃무릇은 가을 햇살 아래 화사한 얼굴을 드러내고 있어서 꽃무릇 철이면 출사 나온 사진작가들로 북적인다. 꽃무릇을 배경으로 인생사진을 남기고 싶다면 영광 불갑사를 찾는 것이 좋다. 


< 영광 불갑사 생태공원 상사화 >
< 영광 불갑산 상사화축제 현장 >

꽃무릇을 따라 가을산행에 나서 보는 것도 좋다. 함평 용천사에서 영광 불갑사까지 이어지는 4km 남짓의 산길은 보이는 그대로 꽃길이다. 하나의 능선으로 이어진 모악산과 불갑산을 편하게 둘러볼 수 있는 둘레길로 꽃길 따라 이어진 산 속 오솔길을 걷는 즐거움이 특별하다.


속세 사람들은 상사화라는 별칭에 빗대어 스님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목숨을 잃은 여인이 꽃무릇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하고는 한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여린 꽃무릇을 보면 전설이 사실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좀 더 객관적인 이유는 꽃무릇의 효용 가치 때문이다. 꽃무릇은 뿌리에 리코린이라는 마비독이 있다. 이런 위험한 식물을 왜 사찰 주변에 많이 심었을까,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뿌리의 독을 섭취하면 위험하지만 당시에는 꼭 필요한 약재였다. 오래 전부터 사찰의 단청이나 건물 목재에 색을 입히거나 그림을 그릴 때 사용했는데 물감에 꽃무릇 진액을 넣어서 사용하면 방부제 역할을 하는 동시에 들쥐나 해충들의 피해까지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슬로시티 증도에서 만난 ‘푸른 하늘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