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넷째 주 남도여행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호젓한 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섬만큼 좋은 곳이 없다. 팬데믹 이후에 여행 트랜드가 바뀌면서 천사섬을 품은 신안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무려 1004개나 되는 섬들이 각각의 매력을 뽐내며 남도여행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신안 섬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데는 꽃과 컬러 마케팅이 한 몫을 했다. 푸른 하늘과 쪽빛 바다, 여기에 아름다운 꽃길까지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신안에서 9월 끝자락에 가장 아름다운 섬은 맨드라미가 피는 병풍도다.
해안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병풍도는 원래 신안 증도에 딸린 부속 섬으로 목포에서 서북쪽으로 26km 떨어진 바다에 있다. 아직 연륙·연도교가 연결되지 않아서 배를 타고 가야 한다. 증도 선착장에서 뱃길로 10분 정도 걸리고 목포항과 압해도 송공선착장에서는 3~40분 정도 소요된다. 신안 지도면 송도선착장과 무안 운남면 신월선착장에서도 여객선이 출발한다.
신안군은 연륙·연도교 사업을 진행하면서 섬 관광 프로젝트를 함께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1섬 1플라워>를 목표로 섬마을마다 대표 꽃동산을 조성했는데 봄철 압해도 애기동백을 시작으로 임자도의 튤립, 선도의 수선화, 도초도의 수국에 이어 병풍도 맨드라미가 가을 꽃섬을 대표하고 있다.
병풍도의 맨드라미 꽃밭은 섬마을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황무지나 다름없는 마을 언덕의 돌을 고르고 흙을 채워서 맨드라미를 심었다. 해마다 꽃밭을 늘려간 덕분에 지금은 40여 종이 넘는 맨드라미가 2백만 송이 넘게 피어나며 가을마다 꽃잔치가 벌어진다. 맨드라미 색깔만 해도 16가지가 넘어서 가을이면 섬 전체가 알록달록 고운 빛으로 물이 든다.
맨드라미는 보기에는 되게 말랑말랑해 보이지만 만져보면 엄청 단단한 꽃이다. ‘시들지 않은 열정’이라는 꽃말처럼 꽃이 강하고 튼튼해서 10월까지 여유롭게 맨드라미를 구경할 수 있다. 병풍도 맨드라미 꽃밭은 닭 볏슬 모양부터 촛불 모양, 여우 꼬리 모양 등 특별한 품종들이 많아서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병풍도는 3백여 명의 주민들이 오순도순 정답게 모여 사는 작은 섬마을이다. 한나절이면 섬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작다. 병풍도 보기 선착장에서 마을 중심에 있는 맨드라미 동산까지 약 4km의 꽃길을 따라 섬 곳곳에서 맨드라미를 만날 수 있는데 꽃길 대부분이 완만한 경사길이다. 병풍도를 상징하는 꽃이 맨드라미라면 색은 붉은색이다. 선착장에 내려서 구불구불 이어진 고샅길에 들어서면 온통 빨간색 지붕인 마을이 나타난다. 붉은 맨드라미가 피어난 것처럼 마을 풍경이 이국적인 매력을 뽐낸다.
썰물 때에 맞춰 병풍도에 도착했다면 노둣길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바다에 잠겨있던 길이 썰물과 함께 드러나면서 병풍도와 주변 섬들을 이어준다. 병풍도의 가장 큰 특징은 보기도와 신추도가 방조제로 연결되어 하나의 섬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썰물 때에는 대기점도·소기점도·소악도와 노둣길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노둣길은 바닷물이 빠질 때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 길을 말하는데 차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넓다. 병풍도에서 시작된 바닷 속 징검다리 길은 총 길이가 1,739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노둣길이다.
병풍도 노둣길은 백 년을 이어 온 바닷길로 섬 주민들의 중요한 이동 통로였다. 섬 마을 주민들이 썰물 때마다 드러나는 갯벌 위로 큰 호박만한 돌들을 날라다가 징검다리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병풍도 사람들이 대기점도와 소기점도로 땔감을 하러 다니기도 하고 시집가는 새색시의 꽃가마도 노둣길을 지나다녀야 했다. 바닷길 징검다리는 차츰차츰 그 높이를 더하다가 마침내 시멘트 포장길이 되었는데 그렇다고 완전히 둑으로 막아 바닷물의 교류를 차단한 것이 아니라 물이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잠기고 물이 빠지면 일시적으로 드러나는 자연친화적인 노둣길이 만들어졌다.
최근 이 노둣길이 <12사도 길>로 새롭게 태어나면서 전국 도보 여행의 성지로 주목받고 있다. 섬마을 주민들의 90%이상이 기독교인 특성을 살려 노둣길을 따라 12사도 예배당을 만들었는데 각 예배당마다 독특한 매력으로 여행자들을 반긴다. 먼 옛날 순례자들이 걸었던 스페인 산티아고길처럼 소박한 노둣길을 따라 작은 섬들을 여행하다보면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