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Made In, But Made With...

스웨덴 이야기. 언어 - 전치사 하나가 말해주는 집단의 철학

by 황지현 박사

전치사는 혼자서는 의미나 기능이 완결되지 않는 품사다. 뒤에 오던 앞에 오던 반드시 의미가 온전한 품사인 명사에 기대어야 한다. 그런데 이 보조 품사 하나가 의미상 온전한 품사보다 더 많은 의미, 예를 들어 나라의 가치관과 사회 철학을 또렷하게 드러낸 사용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스웨덴의 국가 브랜딩 슬로건이다. Made in Sweden이 아니라 Made with Sweden. 즉 ‘스웨덴에서 만들어졌다’가 아니라 ‘스웨덴(스웨덴 불특정 다수 사람들, 문화, 사회정신)과 함께 만들어졌다’. 이 전치사 하나에는 스웨덴 사회가 오랫동안 축적해 온 세계관이 담겨 있다. 경쟁보다 협력, 승자독식보다 공동 책임, 혼자 버티는 개인보다 함께 가는 공동체. “함께”라는 단어는 정치인들이나 조직 리더들의 연설 중 흔히 등장하지만, 비교적 일관되게 제도와 문화 속에 스며들어 있다.

물론 ‘공동 책임’이라는 말이 늘 이상적이지는 않다. 책임을 져야 할 고위 관리자들이 책임져야 할 상황에서 “같이 해결하자”는 말을 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대한 냉소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사회 전반에는 여전히 개인의 탁월함과 서로 밀치는 경쟁보다 협력과 조정이 우선한다는 합의가 강하게 남아 있다.


스웨덴, 스웨덴 사람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체로 무엇일까? 훤칠한 외모, 여유 있는 문화, 이케아와 볼보와 댄싱퀸을 부른 아바, 남자 테니스의 황제 뵨 보리, 말괄량이 삐삐, 그리고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상징되는 복지국가일 것이다.


Screenshot 2026-01-09 011458.jpg 테니스의 황제 뵨 보리처럼 테니스에 탁월한 아들 레오 보리 출처.Inni today


그러나 스웨덴이 처음부터 풍요로운 나라였다는 인식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스웨덴은 극심한 빈곤을 겪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해외로 떠났다. 특히 미국으로의 대규모 이민들의 종착지였다. 오늘날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나라의 김.이.박과 같은 안더손 Andersson 같은 성씨가 그 흔적이다. 이 시기 스웨덴은 인구 유출과 노동력 부족이라는 현실적 위기에 직면했고, 이후 노동시장 제도 개혁과 사회적 타협을 통해 국가의 방향을 재설정하게 된다.


오늘날 스웨덴을 상징하는 노동자 보호 법제, 일과 삶의 균형, 성평등, 보육과 복지 제도는 어느 날 갑자기 이념적으로 설계된 결과물이 아니다. 강력한 노동운동, 사회민주당의 장기 집권,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타협, 그리고 인구 유출이라는 구조적 압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역사적 산물이다. “살기 어렵다고 다 이민간 사람들이 다시 귀국해서 일하게 하려고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복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남자만으로는 노동력이 부족하여 여성의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해 "여성들을 남편으로 부터 해방"시켜서 노동을 통해 독립하고 자아실현게 하자! 육아는 사회가 해결해 줄께라는 육아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말은 우스갯소리이지만, 완전히 근거 없는 농담도 아니다.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기독민주당은 몇 년전에 "가족 내 합의가 있다면 부모 중 한 명만 일하고 아내는 아내는 집에서 가사와 육아를 전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왜 국가가 이런 문제에 까지 관여하는가"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스웨덴은 국토 면적이 한국의 약 4.5배에 달하지만 인구는 약 1,050만 명, 우리나라의 1/4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은 작지 않다. 대기업뿐 아니라 기술 기반 중소기업들도 활발히 해외로 진출해 있다. 통계에 따르면 실제로 한국에만도 120개가 넘는 스웨덴 크고 작은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다.

혁신 역량, 삶의 만족도, 지속가능성, 성평등, 복지 제도 등 다양한 국제 지표에서 스웨덴은 오랫동안 상위권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 나라 역시 완성된 유토피아는 아니다. 소득 격차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자산 격차는 크고, 비교적 낮은 대학입학 경쟁률과 무상 대학교육제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계층 이동성은 생각보다 낮다. 상징적 군주제를 유지하며 왕실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된다.

발렌베리 가문처럼 산업, 경제, 교육.연구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산업 자본가 집단도 존재한다. 우리나라에는 투명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매우 복잡해서 투명해도 언뜻 파악하기 힘든 지배구조이다. 대기업에서 번 돈은 대형은행을 통해 다시 투자하고, 직접 사업 성장뿐 아니라 세상의 여러 기업들을 흡수하면서 성장을 해 왔다. 재단을 만들어서 연구 지원을 하는데 지원 분야는 이 기업들의 미래 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괄목할 만한 것은 얼핏보면 무관해 보이는 비금융 기업(통신회사, 중공업 회사, 기계 회사 등)들과 북구를 대표하는 금융기업의 대주주가 같거나 한 집안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상속세는 오래 전에 폐지되었다. 부모 한 명의 급여로만은 가족전체를 부양하기가 빠듯하다. 제도적으로 견제 장치가 강하다고 해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권력과 자본의 집중, 제도화된 의사 정경유착의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국가는 아니다.


그럼에도 스웨덴을 주의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나라는 발전 과정에서 한국과 적지 않은 유사성을 공유한다. 반도이며 러시아 등 강대국과 가까운 지정학적 위치, 높은 수출 의존도, 외부 시장 의존, 빠른 산업화, 사회적 갈등의 압축적 표출. 다만 갈림길에서의 선택은 달랐다. 경쟁을 극대화하기보다 갈등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향을 택했고, 개인주의는 존중하면서도 개인의 성과를 사회적 안전망과 공리주의와 교환하는 타협을 반복해 왔다.


과거의 성공 공식이 미래에도 유효하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비슷한 조건에서 다른 선택을 했던 국가를 면밀히 이해하는 일은, 시행착오의 비용을 줄이고 불필요한 희생을 피하는 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다. 그대로 베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조건에 맞게 번역하는 것. 그것이 비교의 목적이다.

전치사 하나는 작다. 그러나 어떤 전치사를 선택하느냐는, 어떤 사회가 되고 싶은지를 말해준다."함께"라는 단어처럼 의미가 구체적이지도 않으면서 사회의 특성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다른 단어가 있다. 바로 "남보다"라는 표현이다.
습관처럼 성공을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 정의하는 사회이다. "이렇게 저렇게 공부하고, 취업을 해서 남보다 더 좋은 학교를 가고, 더 빨리, 더 나은 직장에 취직해서, 남보다 더 많이 돈을 벌고, 남보다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다"라는 말. 너무 흔하게 들어서 이것이 이상하고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기 쉽다. 사람마다 취향도, "좋은 것"에 대한 정의도, 재능도 다르다. 그 "남"은 도대체 누구이며, 왜 굳이 나의 행복과 삶을 일면식 없는 불특정 다수의 남과 비교를 통해 정의해야 하는가? 우리도 ‘in’이 아니라 ‘with’를 선택하면 삶이 덜 힘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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