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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Aug 28. 2019

스스로를 위해 일어서자 (2)

스웨덴에서 당연히 부모이고 배우자이면 가사 육아를 함께 한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한다. 여자든 남자든 말이다. 내가 다니는 직장의 어떤 남자 동료는 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전 부인이 남편인 자기에게 같이 사는  내내 가사를 독박시키면서 불거진 갈등으로 이혼했다고 한다. 그 원망이 맘 속에 남아있었을까 그는 저녁시간 내내 다른 남자 동료들에게 집에서 빨래는 누가 하는지, 싱크대와 화장실 청소는 누가하는지 계속 물어보았다.


스웨덴 남자가 자신도 육아와 가사를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한 개인으로서의 스웨덴 남자가 한국 남자보다 더 근대적이거나 가정적이거나 착해서가 절대로 아니다. 이 곳 남자들이 가사를 분담하는 이유는 1) 여자도 경제.사회 활동을 하는데 자기가 가사를 분담하지 않을 명분이 없고 2) 아빠 엄마 모두 육아 휴직을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하도록 제도가 운영되고, 3) 남자도 육아 전담과 살림 떠맡기를 직접 경험하는 과정에서 남.녀 중 한 사람만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는 것은 비인간적일 뿐만 아니라 오래 지속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배우자와 아이들과 함께 남편이자 아버지로 장기적으로 행복하게 사는데 본인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것을 체감하기 때문이다. 즉 가사와 육아를 분담하며 협동하는 것이 결국 본인에게도 이익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반면에 스웨덴 사회에서 여자들이 차마 말 못 하고 느끼는 심리적 압박은 더 크다. 남. 녀 평등사회라고 해도 스웨덴 역시 여자는 뭐든 남자보다 더 노력해야 인정받는다. 남. 녀 평등이기에 배우자에게 경제적으로 오랫동안 의존하는 삶은 사회적으로 용납이 안 되는 분위기이다. 밖에서는 생산적인 사회 일원, 가정 내에서 모범을 보여야 하는 엄마와 딸들은 자기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더 생각한다. 이런 과정에서 스스로의 행복과 안녕은 우선순위에서 자주 밀리곤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자로 살기, 가장의 역할을 하는 것도 너무 힘든 것 같다. 남자라는 이유로 가정의 경제 책임을 아직도 떠 맡는 분위기이고, 그러니 직장 생활 하면서 힘들어도 속으로 앓고... 거시 경제가 잘못되서 사업이 망하거나 해고되어도 자기가 무능력해서라고 착각하고 스스로를 자책한다. 사람을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로 평가하는 병든 사회. 우리나라에서 일할 때 남자 선배/동료들은 집안에서 돈 못벌어 온다고 핀잔을 들었다는 말을 가끔 들었다. 아픈데도 윗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직장생활을 잘 할 수 있으니 야근을 계속하라는 말도 들었단다. 늘 내 편이어야 하는 사람에게 아파도 너는 우리집 생계책임지는 사람이니 야근을 계속하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


참가자 대부분이 스웨덴 여자인 한 소모임이 있다. 이 모임에 참여하는 남자는 자기 일에 너무 푹 빠진 로봇 과학자, 한 명은 보통 남자보다 좀 더 예민하고 배려심 많고 다른 이들을 무조건 도와주는 성향의 어느 회사의 부서장, 이렇게 단 두 명이다. 이 모임에서는 때로는 속상한 이야기, 자랑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까지 해야 할 때가 있다.

난 이 모임에 나가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이 세상의 여자는 역사적, 사회적, 생물학적 이유로 자라면서 스스로의 안녕과 행복을 우선시하지 않고 성장하기가 너무 쉽다는 것. 하지만 스웨덴에서 자란 여자들은 이 문제를 늘 의식하며, 이에 대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독려받으며 성장한다는 것을.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조상의 구습의 잔재 때문에 엄마이거나 딸인 여자가 희생하며 사는 것을 모정, 효녀 등의 이름으로 미화하고 은근히 독려한다는 것을...


이곳 여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너는 네가 원하는 삶을 선택할 권리와 네 선택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어. 네 권리와 행복은 누가 대신 지켜줄 수 없고 네가 지켜야 하는 거야. 그러니 스스로를 위해 일어서야 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며 자랐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일부 여성은 정말 운이 좋아 차별 없이, 결혼을 해야 한다, 여자는 그저 시집이나 잘 가야 한다는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말을 집에서나 대학시절까지는 단 한 번도 듣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이는 정말 행운이고 축복이다.
하지만 사회인이 되어서 대면한 집과 상아탑 밖의 세상은 황당하다. 늘 여자는... 해야 한다라는 것을 굳이 소리 내서 말은 안 해도 느끼게 하는 분위기이다. 리그에 선 소수인 여자가 전략적으로나마 같은 소수를 더 끌어 모으고 손잡고 함께 가 줘야 소수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다수인 그들과 함께 갈 수 있다. 하지만 그 리그에 우뚝 선 소수인 여자는 오히려 다수인 그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자신의 존재가 시간이 가도 계속해서 독보적인 것에 만족한다. 이것을 보고 다수의 그들, 혹은 여자들 조차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라고 비아냥거리거나 자조한다.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다. 다만 소수는 협력하고, 서로 돕고 더 끌어줘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잘 얘기해 주지 않았을 뿐이다.


이 사회 여자들이 서로 돕고, 유대감을 강하게 하는 것을 독려하기 위해 해마다 하는 전통적인 행사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여자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전국 "여자 마라톤"이다. 그리고 적지 않은 단체와 기업이 "여자 사업가 네트워크", "여성 컨퍼런스"등의 행사를 개최한다. 그리고 여자들이 힘든 상황을 딛고 어떻게 이 세상에서 스스로 열정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가치를 창출했는 성공담을 공유를 하며 서로 영감도 주고, 격려하는 행사도 적지 않다.


얼마 전 있었던 여성의 날이 생각난다. 그 날 마침 뭐 기관에서 주관한 여성의 날 기념 조찬행사에 초대를 받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이 1년에 단 하루인 이 날의 상징성을 생각하며 큰 노력 없이 관습을 타파하기 위해 쉽게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그래서 결국 화장을 생략하고 행사에 나타났다. 여성의 날이라는 걸, 그래서 나도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권리가 있다는 걸 나 스스로에게 선포라도 하는 듯한 기분으로 행진이라도 하듯이 당당히 행사장에 걸어 들어갔다.
그러나... 나 지금 배신당한 거?

내가 틀렸다. 다른 여인들은 꽃단장에 옷장을 털어 제일 예쁜 옷을 찾아낸 것처럼 멋지게 하고 나타났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축하하기 위해서. 결국 나의 임기응변은 어설픈 페미니스트 코스프레로 끝나고 말았다.

 

그렇다. 이 날은 좋은 날. 그래서인지 아침부터 다들 꽃처럼 환하게 등장했구나.

이 날의 청중이 눈시울을 적시며 주목하게 한 연사는 남아프리가 공화국의 평화와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가 감옥에 간 대통령 후보였던 아빠를 보며 일찍 어른이 된 여인이다. 그녀는 여성 운동가이자 사업가이며 이탈리아 보그 잡지 에디터도 했고, 지금은 유네스코에서 일한단다. 그녀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투옥되었다. 그 때 어린 그녀는  정부에 아버지를 석방해달라고 호소하는 편지를 썼단다. 아무도 이 편지를 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이 편지를 읽고 정부의 한 인사가 그녀에게 회신을 했단다. 이렇게 그녀는 "내가 목소리를 내니까 사람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내 말을 진지하게 듣고 목소리를 냄으로써 무엇인가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고 했다.

   

나는 이 연사의 얼굴을 모르고 왔는데 많은 여자들 중에서 이 여인은 멀리서 봐도 눈에 띄었다. 겸손함과 온유함과 당당함이 느껴지는 표정. 그리고 곧은 자세. 때와 장소를 가려 엄선해서 입은 아름다우면서도 깔끔한 옷차림. 그녀를 보니 아가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스스로를 가꾸고, 근면하고, 멀리서 봐도 선명하고, 군대같이 당당한 여자. 남. 녀 불문하고 한결같이 늘 이런 사람은 없겠지만 난 성경이 말하는 아름다운 여인상이 참 마음에 든다.


에휴... 나도 앞으로는 1년에 하루인 이 좋은 날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임기응변 - 화장 생략하고 공적인 자리에 나오기-따위로 당당함을 과시하려다 축제날에 꽃단장을 하고 오는 다른 여성들과의 연대감을 저버리는 일은 자제해야 할 것 같다. 난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나는 다만 모든 인간은 동등한 권리가 있고 가치가 같다고 믿는다. 이건 거창한 이론도 아니고 누구를 애써 설득해야 할 의견도 아니다. 유치원생도 이해하는 기본 상식이다.


대신 평소에 "스스로를 위해 일어서는” 연습과 "목소리 내기 연습"을 좀 더 해야겠다. 일어서는 순간의 어색함과 그리고 얼마 안 갈 주변의 하찮은 저항 때문에 겪어야 할 심적 불편함을 잠깐만 견디고 나면, 좀 더 오랫동안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을 되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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