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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Sep 30. 2019

스스로를 위해 나서자 (1)

We have to raise the bar in front of us

10년, 20년이 다 되도록 멈추지 않고 달리다가 결국 몸과 마음이 더 이상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게 된 사람에게 심리상담가들은 인지치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약간 숨이 찰 정도의 운동을 매일 30분 이상하라고 한다. 그리고 현재 실제 상황과 상관없는 것, 혹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생각과 걱정은 수용은 하되 잠시 옆으로 밀어 놓으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여기,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있는 평가 하거나 맘대로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 과정에서 마음도 정화되고 몸도 안정된다고 한다.

살아가는 것이 버겁게 느껴질 때마다 나는 내가 일상을 사는 공간에서 벗어나 여행을 하곤 했다. 금요일이나 월요일에 휴가를 내고 주말을 껴서 감정과 개성을 드러내는 것을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벗어나 왠지 좀 느긋하게 여유를 부려도 될 것 같은 남유럽의 어느 곳으로 즉흥적으로 떠났다. 그때마다 나를 힘들게 했던 문제들은 여행지까지 나를 쫓아다녔다. 놀랍지도 않다. 문제는 실체가 있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문제는 누군가 내뱉은 그리 유쾌하지는 않은 말, 행동, 불가능해 보였던 과제 등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고 말 과거 사건을 내가 불리하게 해석하는 과정에서 태어나 내 머릿속에 눌러앉아 내가 고민하고 걱정할수록 그 덩치가 커져만 가는 환영이기 때문이다. 바보같이 난 내 머릿속에 있는 환영들로부터 피하기 위해 내 몸을 움직여 다른 장소로 여행을 떠나갔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올해는 집에서 5분 정도만 걸으면 나오는 생태공원과 숲을 산책하며 그 순간에 집중을 했다. 사시사철 자연환경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올해 처음 눈여겨보았다. 예전에 안 보이던 것도 보이고 만물 주의 위대함, 창조물의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았다. 새들의 울음소리 종류나 크기도 다르고, 때에 따라 피는 꽃들의 종류도 다양하다. 여름만 되면 어김없이 누가 데려다 놨는지 양 떼가 지나다닌다. 봄에 벚꽃비가 내리고 얼마 지나 7월이 되면 나무에 버찌가 검붉게 익는다.  10월에 사과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다.

마음의 휴식의 장소는 바로 내가 사는 곳에 있었는데...... 내가 존재하는 여기, 지금 이 순간에 집중을 하고 둘러보면 늘 내 곁에 있어서 무심코 스쳐 지나갔던 것들이 결코 당연한 것도 평범한 것도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내가 이 현재를 살고 있는 동안 머릿속에 있는 그 문제라는 환영을 내 마음 밖으로 놓아주겠다는 결정을 했다. 그 순간부터 나는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내가 머무는 이 공간.. 자작나무가 높이 서 있고 울음소리가 다른 새들이 울고 하늘은 파랗고 여름이어도 가끔은 대기가 서늘한 나의 동네, 나의 삶의 터전이  그 어느 휴양지보다도 눈이 부신 곳이었다는 것을... 전나무와 자작나무 숲의 공기가 맑아서 숨을 한껏 들이마시고 내쉬면 마음의 바닥까지 깨끗해지는 곳. 나의 영혼을 위로하고 정화시켜주는 치유제가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요즘에는 정보가 넘치고 검증되지 않은 의견이 사실인 양 유포되는 일도 많다. 그래서 세상 변하는 전체 그림을 그나마 객관적으로 선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상공회의소에서 분기마다 주관하는 스톡홀름 지표 발표회를 가급적 빠지지 않고 직접 가서 듣게 되었다. 각 분야 경제전문가들이 국제 정세, 거시 경제, 많은 기업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를 다각적으로 분석, 45분 동안 종합 정리를 해주고 질의응답 시간도 있다. 꽤 만족스럽고 종합 결과에 대한 신뢰도도 높다.

점심시간 외에는 시간 내기 어려운 참석자들을 배려해서 주최 측은 발표를 들으면서 점심을 먹고 발표회가 끝나면 각자의 회사로 돌아가서 일할 수 있도록 간단한 음식과 커피를 준비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점심으로 손으로 쥐고 먹는 김밥을 줘서 놀랍고도 정겨웠다. 나를 빼고 모두 스웨덴 사람들인데 썰지도 않은 김밥 반줄을 손에 들고 입으로 베어 먹으며 참 맛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여기가 여의도인가 스톡홀름인가라는 잠시 헷갈렸다.

 

최근 10년간 스웨덴에도 과로 환자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의사, 심리상담가, 방송에서도 "요즘 들어서 업무 성과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커졌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이렇게 변한 이유에 대한 근본 원인에 대한 설명은 아무도 안 한다. 그리고 이것이 개인의 노력이나 끈기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에 대해서도 알면서도 굳이 큰소리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생각과 전혀 상관없이 참석한 스톡홀름 지표 설명회에 참석해서 알게 된 이사분기 통계를 보고 위의 의문에 대한 답은 너무 분명하고 간단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통계에 따르면 몇 개 산업 분야의 매출과 수익성은 괄목할 만큼 향상했는데 사람들이 느끼는 그 분야의 일자리 증가에 대한 전망은 형편없이 나빠졌단다. 반비례하는 이 두 지표 간의 인과관계를 아주 단순히 설명하자면 이전보다 더 적은 인원으로 더 생산하고, 더 수익을 더 많이 내려고 하니 직장에 남은 사람들은 업무 과부하가 걸려 삶의 질이 낮아지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경쟁보다 협동이 더 중요하다고 들으면서 숲과 들에서 산책하고, 여름에는 가족과 소풍과 물놀이, 겨울에는 썰매 타기와 눈사람 만들기를 하면서 유년기를 보내고 학교에서도 등수 매기는 성적 평가에 대한 개념은 없는 이 곳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더 취약할 것 같다. 이곳은 이제야 도시화가 진행되는지 여기저기 건물도  많이 들어서고 출퇴근길 교통 상황도 악화되었다.


이 곳 사람들은 예전보다 사회분위기가 건강하지 않은 방향으로 변한다고 걱정한다. 다들 복지, 의료, 교육이 과거에 비해 체감할 정도로 악화되었다고 한다. 어느 행사에서 내 옆에 우연히 온건당 대변인 앉게 되어서 잠시 얘기를 나눴다. 스웨덴이 이런 문제가 있으니까 혹시 스웨덴을 롤모델로 삼으려는 나라가 있다면 벤치마킹 대상을 조심해서 선별적으로 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속으로 우리나라는 정반대니까 스웨덴과 한국을 큰 샐러드 그릇에 섞어서 반으로 나누면 좀 더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세상이 빨리 돌아간다고들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바빠지고 과로하며 심리적 압박을 이전보다 더 많이 받게 된 이유는 세상이 예전보다 빨리 돌아가서가 아니다. 주식시장에서 투자가들에게 약속한 배당금과 주가를 달성하기 위해 일할 사람 수를 줄여버려서 한 명 한 명이 할 일이 더 많아졌는데 시간은 한정되어있으니 더 빨리 일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결국 과로로 병이 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사람의 삶의 질 저하는 물론이고, 국가에서 지출해야 하는 병가 보험비, 의료비도 늘어간다. 아픈 사람이 하던 일은 남아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분배되고 그럼 일하는 사람은 더 힘들어지고.. 과로병은 약도 없고 회복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린다.


이 악순환의 소용돌이 너머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허우적거리는 사람은 있는지 없는지 관심 없이 눈 가리고 웃고 있는 자는 누굴까? 답은 안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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