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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Dec 28. 2020

인문학이 살 길인데...

'20년 스웨덴에서 '10년 소송과 왕따로 고통받던 한 학자의 글을 읽고

디지털화, 인공지능, 가상현실, 데이터, 핀테크 뭐 이런 게 4차 혁명이라는 신박한 단어로 포장해서 새로운 현상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요즘... 의외로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면 훨씬 재미있을 텐데... 

스웨덴도 우리나라도 학계 내에서 인문학이 많이 힘든 것 같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은 이 곳 왕립 공과대학에서 언어학 교수가 이끄는 열린 세미나를 들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스웨덴어 문법. 철자 프로그램은 종합대학교 스웨덴 어문학과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스웨덴 왕립 공과대학이 주관으로 공학과 인문학의 협업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학부 전공 선택한다면 난 주저하지 않고 인문학이나 기초 학문을 추천한다. 20년간 각 산업을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에서 일해본 결과 세상이 빠르게 변하기에 일하는 데 필요한 지식은 평생 계속해서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세상의 필요와 좀 더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게 되는데 도움이 될 해답이 어느 정도는 여기에 있는 것 같다. 해답은 권위와 학문적 사대주의에서 벗어나기, 많은 사람들이 알아듣기 쉬운 말을 사용해서 메시지를 전하기, 상아탑 밖의 대중이 관심을 갖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학문으로 거듭나기이다. 벌써 이 글이 나온 지 10년이 지났다. 글에 그분의 소설이 논란에 휩싸이며 몇 차례의 재판을 겪고, 또 그 후에도 동료들의 외면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억울함도 느껴진다. 

이것은 10년 전에 나온 마광수 선생님의 글이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33111.html


마광수 선생님. 가끔 문득 보고 싶은 선생님 중 한 분이다. 1학년 신입생의 패기로 국문과도 아니면서 "즐거운 사라" 공판일에 문과대 게시판에 붙은 함께 재판장에 가자는 포스터를 보고 얼굴도 본 적 없는 몇몇 국문과 학생들을 따라서 선생님을 응원하러 갔다. 5.18 희생자, 억울한 노동자, 고위층의 비리와 앞에서는 큰소리도 못 내면서 실험 정신으로 쓴 판타지 소설 속의 허구를 미풍양속을 학자. 교수가 헤친다는 이유로 법으로 마음대로 재단해서 공개재판까지 한다는 것이 코미디 같아서였다. 그렇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법원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공판 당일 강의나 글에서 볼 수 있던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던 선생님의 평소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재판장에서 선생님은 무서운 어른에게 혼나고 있는 풀 죽은 어린아이 같았다. 소설 속 허구보다 더 한 범죄, 예를 들자면 3종 범죄 세트인 (인권 모욕을 놀이 문화라고 합리화하고 이걸로 돈벌이하는 걸 허락해주는 어이없는 집단의식, 공금 오용, 배우자와 신뢰 배신) 상업 시설은 폐하 지도, 제대로 혼내지도 못하면서 검사는 허구에 불과한 소설 부분 부분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기세 등등한 모습이었다. 코미디를 기대하고 갔는데 다들 맘속으로 분노를 느끼며 재판장에서 나왔다.


세상에 알려진 모습과 달리 강의를 통해 알게 된 그분의 사회관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건전하고, 상식적이고 현실적이었다. 그는 악성을 포함한 인간의 약함을 솔직히 받아들이면서도 정의를 옹호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 퍼져있던 위선, 학문의 사대주의와 권위주의의 악영향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책상에 올라서서 강의하는 도중 담배 피시는 것 (당시 실내 흡연이 허용되던 시절이라)과 소송으로 생긴 울화병, 그리고 학교에서겪는 부당한 대우에 대한 억울함으로 인해 아주 가끔 당신도 모르게 내뱉으시던 살짝 듣기 부담스러웠던 몇몇 단어만 빼고 강의가 참신하고 흥미로워서 마음에 들었다. 실제로 누구라도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더 심한 욕을 하고도 울분이 풀리지 않았을 것 같다.

실제로 교수실에 찾아가면 오히려 다소 긴장한 모습으로 손과 두 다리를 가지런하게 모으고 학생들을 맞이하곤 하셨다. 학생들의 고민도 잘 들어주셨던 것이 기억난다. 

사람이 소송이나 재판을 겪는 동안 피가 마르는 것 같은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게다가 동료 등 주변 사람까지 등을 돌리면 아무리 빛나던 천재라도 힘을 못쓴다. 이 분이 소송, 왕따 등의 트라우마만 없었더도 그를 빛나는 젊은 학자로 만들었던 윤동주 연구에서 더 나아가 고전, 근. 현대 우리 문학에 대한 신박한 해석과 업적을 많이 남기셨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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