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데모사에 있는 쇼팽과 상드의 집에 들러서
마요르카. 12년 전 여름에는 정말 쉴 목적으로 3박 4일 휴가를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다가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쇼팽이 프랑스에 돌아와 삶을 마감하기 전에 요양을 한 장소이기에 마요르카에 가보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피아니스트. 마요르카나 녹턴 등은 몰라도 즉흥환상곡이나 연습곡 등은 작품의 감정뿐 아니라 우선 손가락으로 빠르고 예상하기도 힘들과 흔치 않은 음조로 연결되는 멜로디를 정확하게 박자를 맞춰 치지 않으면 멜로디가 흐지부지 뭉개지고 만다. 초등학생인 내게는 참 배우기도 힘들었고 지금도 제대로 연주하기 어렵다.
별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비행기표를 샀다. 스톡홀름 아를란다 공항 이륙. 약 3시간 반이 좀 넘어서 마요르카 라스 팔마스 공항에 도착했다. 시끌벅적한 도심지가 아닌 공항에서 서쪽 방향 8킬로 미터 떨어진 곳에 예약한 호텔에 짐을 풀었다.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니 하늘은 금방 울음이라도 터트릴 듯이 꾸물꾸물하다.
그래도 팔마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산마을을 지나 약 한 시간... 발데모사에 다 왔다. 좁은 돌길을 걸었다.
쇼팽이 당시 프랑스 작가 조르주 상드와 살았던 묵었던 발데모사에 있는 수도원의 방 세 칸짜리 아파트는 지금 "쇼팽과 상드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쇼팽과 내가 100년이 훌쩍 넘는 시차를 뒀지만 같은 장소에 있다니... 참 설렌다.
"피아니스트예요?” 아무 말 없이 쇼팽이 쳤다는 피아노를 바라보고 있던 내게 아담한 체구의 여자 안내원이 다가와 말을 건다. 그 안내원은 아르메니아 사람인데 마요르카에 정착해서 산 지 오래됐다고 한다. 나는 한국 사람인데 피아노 전공자는 아니고 한국과 뻬쩨르부르크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스웨덴의 어느 은행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뻬쩨르부르크에서 공부했다고요? 그럼 러시아어를 하겠네요? 그녀는 반가워했다. 자기는 아르메니아 사람인데 러시아에서 살다가 스페인에 정착한지 25년이 넘는다고 했다. 그녀는 모국어인 러시아어로 마음껏 편하게 당시 그들의 삶에 대해 내게 이야기해줬다.
이 곳 주민들은 폐렴 말기의 쇼팽을 보고 병이 전염될까 봐 두려워 임대를 거부했단다. 쇼팽과 상드는 살 곳이 마땅치 않아 결국 이 수도원 안에 있는 아파트를 어렵게 구해서 살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그의 병세가 너무 안 좋아서 임대인으로 거부당할 정도로 많이 아팠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곳에 머무는 그 두 달 남짓한 길지 않은 시간에 매일 피아노를 연주했고, 전주곡 24번을 작곡, 완성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방 가운데 전시된 그가 연주하던 피아노는 한 은행가가 그를 위해 구입한 것이라고 한다. 그가 이곳을 떠나 프랑스로 돌아갈 때 세관 등 운반상의 번거로움으로 인해 피아노는 갖고 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 덕에 지금 이곳에서 그가 치다가 남기고 간 피아노를 볼 수가 있다.
피아노 방에는 24번 전주곡이 흘러 퍼진다.
Chopin이 보낸 마요르카 발데모사의 수도원 아파트 방의 큰 창문이 발코니로 나있다. 정원 같은 이 발코니로 나가면 빨간, 노랑, 보라 알록달록 꽃밭이 보인다. 그리고 산마을의 경치가 눈에 시원하게 들어온다.
사계절 내내 날씨가 따뜻해서 빨간색, 노란색, 분홍색 꽃이 그때에도 펴 있었을 텐데... 기쁜 느낌을 주는 색깔의 꽃이 폈음에도 이 정원은 왠지 아련하고 우울한 느낌이다.
평생 피아노와 작곡이 삶의 전부였던 이 젊은 재능이 혹시나 병세가 나아질까라는 작은 희망을 갖고 찾아온 마요르카. 그러나 쇼팽의 요양이 목적이었던 이 짧은 마요르카 거주 시기에 상드는 다른 사람과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데리고 와서 지냈다고 한다. 상드는 프랑스 사교계에서 활약 당시에는 정작 아이를 잘 돌보지도,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도 않았다고 한다. 쇼팽과 상드는 이 곳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투었다.
요양을 위해 온 장소에서 일상생활은 삐거덕 거리고, 정서적 위안을 줄 것으로 기대했던 동반자와는 같은 장소에 있어도 마음의 거리는 멀었을 것이다. 악상을 떠올리고, 피아노를 치고, 악보를 고치다가 잠시 뜰에 나와서 이 꽃밭과 산마을을 바라보며 쇼팽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쇼팽은 여기에 머물던 당시 아직 젊은 나이지만 자신의 강렬했던 삶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감지했을까...
국제화된 지금을 사는 사람도 해외에서 오래 살면 조국이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이는 본능같다. 아무리 조국이 모순 덩어리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쇼팽에게는 돌아갈 조국 폴란드는 지도상에 없었다.
문득 쇼팽과 상드 자신들은 당시 마요르카에서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궁금했다. 마침 안내하던 사람이 당시 이곳에서의 삶을 조르주 상드가 써서 출판했다고 귀띔한다. 그와 함께 이 시기를 이 장소에서 보낸 상드가 쓴 "마요르카에서의 겨울"이는 책이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팔리고 있었다. 안내원이 건네준 러시아어 번역본을 샀다.
상드의 1인칭 시점에서 기록된 회고록 같은 이 책에서 안타깝게도 그는 마요르카 현지인들을 인심이 나쁘고 계산적인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다. 이 곳 사람들의 생활은 비위생적이고 건물은 유지보수가 안 되어있고 문화유산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말한다.
어느 집에 식사초대를 받아서 갔는데 수프에서 전갈이 나와서 인상을 찌푸렸더니 주인이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이 자신을 바라봤다는 등 당시 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가 많다. 상드는 이 책에 당시 자신의 생활상을 어느 정도 현실적으로 반영했을 것이다. 당시 작가가 마요르카에서 생활을 어떻게 인식했는지가 드러나는 책이다. 하지만 당시 그녀의 불행하고 불만족한 마음의 프리즘을 통해 당시 생활상이 그려진 것처럼 보인다.
아쉽게도 이 작품에는 함께 마요르카에 머물었던 쇼팽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거의 없다. 여러모로 안타까운 이 책은 안 사도 될 뻔했다.
그 아파트를 떠나는 길에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버스를 타고 발데모사를 떠났다.
다시 팔마에 도착했다. 버스터미널에서 스페인 광장을 지나 10여분을 걸어서 팔마 대성당 앞에 갔다. 성곽에서 바다 경치를 내려다보았다. 아이들의 순진한 웃음소리가 파도 소리에 섞여 대기에 부서진다.
시간은 오후를 지나 저녁으로 넘어간다. 식어가는 바닷바람이 참 상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