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이 글은 ‘내 이야기’, 즉 ‘자기민속지학’ (autoethnography)적 접근을 통해 1995년의 신세대 댄스가요에 대해 음악하기 (musicking)와 팬덤 (fandom)을 이론적 배경으로 하여 논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현재 K pop에 대한 연구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반면에 K pop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신세대 댄스 가요에 대한 논의는 K pop에 비해 많이 연구되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신세대 댄스가요를 기반으로한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고, 이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신세대 댄스가요의 특성을 논하기 이전에 우선 ‘신세대’의 정의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종수 (1995)에 따르면, 신세대는 연령적으로 10대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청소년과 청년들, 그 중에서도 기존의 가치체계와 문화에 대해 저항하며 기성문화에 대해 도전으로 다가오는 집단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신세대 댄스 가요에서 지칭하는 ‘신세대’는 사전적인 의미의 ‘신세대’라기 보다는 ‘X세대’의 의미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신세대 댄 스 가요는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성행했으며, 신세대 댄스가요의 음악, 가사, 패션 등은 특히 1990년대 초중반의 20대들의 사회문화적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반영했기 때문이다. X세대는 일반적으로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중후반까지 출생한 세대를 의미하며, 이전의 베이비붐 세대와는 달리 비교적 경제적 풍요 속에서 성장했고, 대학진학률이 높아졌으며, 소비에 관심이 높은 세대라고 볼 수 있다. (함인희 2002) 즉, X세대는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사이에 청년 시절을 보낸 세대이며, 민주화를 위한 정치적 투쟁보다는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며, 이를 패션과 다양한 사회문화적 트렌드를 통해 구현했던 세대이다. 한편 X세대의 문화를 반영한 신세대 댄스 가요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서구의 다양한 댄스 장르들을 도입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유로 댄스에 기반한 하우스, 테크노, 레이브, 트랜스와 같은 전자 댄스음악이 신세대 댄스 가요를 통해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마찬가지로 흑인 음악 장르인 레게, 소울, 힙합 등도 신세대 댄스 가요를 통해 국내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규탁 2016) 신세대 댄스가요는 1990년대 중반에 절정기를 맞이하였으나, 여러가지 한계점을 드러낸 채 1996년을 기점으로 점차 퇴보하였다. 신세대 댄스 가요의 한계를 살펴보면, 특히 가요 관계자들의 부도덕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신세대 댄스가요 작곡가들은 1990년대 당시 일본 문화 수입 금지 조치를 악용하여 일본 댄스 음악을 무분별하게 표절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으며, 1996년 룰라의 3집 <천상유애> 표절 논란을 기점으로 신세대 댄스 가요의 표절 공론화가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또다른 신세대 댄스 가요의 한계점으로는 주먹구구식 기획 시스템을 들 수 있다. 1980년대-1990년대 사이 신세대 댄스 가수로 활동했 던 많은 아티스트들은 서울 시내의 내로라 하는 나이트클럽의 유명 댄서나 DJ 출신들이 많았으며, 이들은 매니저들에 의해 발탁되어 데뷔하였다. 그러나 기획사의 연습생 트레이닝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아 많은 신세대 댄스 가수들은 주먹구구식으로 데뷔를 위해 급하게 트레이닝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기획사 대표의 부도덕성에 대한 논란도 신세대 댄스 가요의 한계점이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신세대 댄스가요의 대표적인 아티스트였던 박미경, 노이즈, 김건모, 클론 등을 배출해냈던, 메이저 기획사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라인음향 의 대표 김창환은 탈세 논란으로 인해 김창환 사단의 붕괴를 경험해야 했으며, 라인음향 소속의 가수들의 활동 마저 불투명해지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요컨대 신세대 댄스 가요는 다양한 댄스 하위 장르를 국내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대중화 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가요계 관련자들의 비양심적인 행동들을 노출시키기도 하는 한계점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태양비 2023; 김성민 2018)
2. 이론적 배경
2.1. 자기민속지학 (Autoethnography)
문화기술지라고도 불리는 민속지학은 문화인류학에서 현장연구시 연구를 수행하는 전통에서 시작되었으며, 연구자의 현장 관찰과 기록을 통해 사회문화적 현상을 해석하는 과정을 지칭한다. (정재철 1997) 민속지학에서 파생된 자기민속지학은 연구자의 개인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여 사회문화적 현상을 고찰하는 방식이며 연구자가 서술 주체 및 분석 현상이 되는것을 의미한다. (주형일 2007) 자기민속지학 방법은 연구자 자신을 대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 기 때문에 자료의 수집과 해석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하면 연구의 방향이 자기중심적이고 객관성을 상실한 채 지나치게 주관적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자기민속지학 연구자들은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 객관성을 유지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부단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
2.2. 음악하기 (Musicking)
‘음악하기’라는 개념은 음악학자 스몰 (Christopher Small)에 의해 고안되었다. 스몰은 인류학적인 사유를 통해 음악은 사람들의 다양한 행동과 상호작용의 산물이라는 것을 주장하며, 인간의 총체적인 음악 활동은 일련의 소리, 장소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다양한 사회문화적 의미를 수용한다고 본다. (Small 1998) 또한 스몰에 따르면, 음악하기를 통해 음악과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음악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 간의 복합적인 관계가 형성되며, 인간은 음악하기를 통해 자기의 주변 세계를 확장하고 통합시킬 수 있다. 즉 ‘음악하기’는 제의적, 연행적, 실천적, 수행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음악활동이라는 개념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데 의의가 있다. 다시 말해, 음악에 대한 이해를 단순히 음악 작품에서 머무는 것이 아닌, 연주와 그 이외의 다층적인 맥락안에서 복합적인 정체성을 찾는 과정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2.3. 팬덤 (Fandom)
팬덤은 특정한 연예인 혹은 대중음악 장르를 열광적으로 선호하는 팬들의 자발적인 모임의 형태이며,팬 (fan)은 ‘fanatic’ (열정적인)의 줄임말이고, 덤 (dom)은 특정한 집단의 세력을 의미한다. 팬덤은 문화실천적 성격이 강하며, 집단적인 문화적 주체성 현상을 가지며,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임재민, 김대현 2016) 정민우와 이나영 (2009)은 1세대 팬덤과 2세대 팬덤의 차이에 대해 언급한다. 이들에 따르면, 1990년대에 등장했던 1세대 팬덤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주로 이루어졌으며, 일방적인 형태로 특정한 스타에 대해 열정을 표현했던 반면, 2000년대 후반부터 등장했던 2세대 팬덤은 중첩적이고 보다 다양한 층위의 팬덤 구성이 특징적이다. 즉, 팬덤 구성원들의 성별, 배경, 연령대도 다양해졌으며, 한 특정 스타를 일방적으로 지지하기 보다는 여러 스타들을 동시에 좋아하기도 하는 등, 1세대 팬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3. 사례연구:
3.1.내 이야기: 음악하기 (Musicking)
1995년은 신세대 댄스가요의 절정기였던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나는 일명 X세대 언니 오빠들이 주도했던 최신 댄스가요에 빠져 살았으며, (나보다 10살정도 많은) 이들의 화려한 무대를 보면서 X세대 언니 오빠들을 마냥 부러워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터넷같은 온라인 미디어가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TV 및 라디오 본방 사수는 필수였다. 나는 KBS <가요 톱텐>,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SBS <인기가요 20>등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매주 시청했으며, 대중음악에 대해 비교적 열린 시각을 가지고 있던 부모님 덕분에 인기 가수의 CD를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었고, 연예인들의 소식과 인터뷰 내용을 담은 월간 잡지도 정기적으로 구독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 방송국에 근무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가요 프로그램 공개 방송도 가끔 갈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1995년 가장 인기있었던 신세대 댄스가요를 꼽으라고 한다면, 두 말 할 것도 없이 룰라의 2 집 타이틀곡인 <날개잃은 천사>와 박미경의 <이브의 경고>였다. 룰라의 메인 보컬 김지현과 1994년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재데뷔해 1995년 <이브의 경고>로 인기 최절정을 맞이 한 박미경은 탁월한 가창력 뿐만 아니라 화려한 외모와 당찬 퍼포먼스를 보여줌으로써 당시 남성가수 중심이었던 가요계에 여성가수로서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당시 유행했던 룰라의 ‘엉덩이 춤’과 박미경의 ‘손바닥 뒤집기 춤’은 누구나 따라하기 쉬운 춤이었다. <날개잃은 천사>와 <이브의 경고>의 파급력은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엄청났다. 같은반 친구들은 담임 선생님 몰래 룰라와 박미경의 음반 카세트 테이프를 가져와서 쉬는 시간마다 듣고 따라 불렀고, 춤에 자신이 있는 친구들은 룰라와 박미경의 춤을 커버댄스로 추기도 하였다. 즉 교실은 쉬는 시간마다 노래와 춤의 장(場)이었으며, 특히 소풍이나 수련회 장기자랑에서 룰라와 박미경의 노래는 단연 인기 순위 1위였다. 또한 노래방에 가면 이 두 곡을 서로 부르겠다고 친구들끼리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였다.
룰라와 박미경 음악의 인기는 나와 내 친구들을 단순히 음악을 감상하는 ‘수용자’ 입장에서 벗어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음악 활동 참여자로 변모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노래 를 잘 부르고 못 부르고, 춤을 잘 추고, 못 추고의 여부는 우리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주말에 친구들과 모이면,음악 녹음을 위해 문구점에서 공테이프를 구입하였고, <날개 잃은 천사> 와 <이브의 경고>를 소위 말하는 ‘떼창’으로 여러 번 연습한 뒤에 우리들의 목소리를 공테이프에 녹음하기 시작하였다. 친구들중에 유일하게 피아노 반주가 가능했던 나는 타고난 절대 음감의 힘을 이용해 룰라의 <날개잃은 천사>와 박미경의 <이브의 경고> 코드 반주를 카피한 뒤에 친구들의 노래에 맞춰 피아노 반주를 해주었고, 친구들의 노래와 나의 피아노 반주를 동시에 공테이프에 녹음하여 진정한 ‘자생성’이 묻어나는 DIY (Do it yourself) 음반을 만들었다. 피아노 반주의 장점은 한 곡을 다양한 장르의 버전으로 변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원곡처럼 댄스 버전으로도 연주해 보기도 했고, 발라드 버전으로 변주해 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녹음된 공테이프 음반은 여러 번 이사로 인하여 잃어버렸지만, 우리의 녹음 작업 추억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다. 스몰의 음악하기 (musicking)이론에 의거하여 우리는 ‘음악하기’를 통해 능동적으로 음악 활동 안에서 보다 친밀한 연대감과 친밀한 상호관계를 형성해 나갔다.
3.2. 내 이야기: 팬덤 (Fandom)
1995년은 X세대 가수들의 최전성기였다. X세대 가수들의 노래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입고 나왔던 무대 의상과 화장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다. X세대 가수들의 스타일은 30여년이 지난 현재 기준으로도 꽤 과감하고 센세이셔널했다. 청순하고 동안 (童顔)을 선호하는 자연스러운 스타일의 요즘 메이크업과는 달리, 1995년의 X세대 가수들의 메이크업은 어두운 톤의 피부 표현과 과감하고 진한 컬러의 눈화장과 립스틱이 특징적이었다. 머리 스타일은 지금 기준으로도 봐도 튀는 형형색색의 염색 머리가 유행이었고, 옷차림 역시 짧은 크롭티 (배꼽티) 에 통이 상당히 넓은 바지, 옷 소재는 (관리가 어려운) 실크 소재가 대대적인 유행이었다. 이러한 X세대 가수들의 패션 스타일은 초등학교 복장 규정상 모두 금지되는 사항들이었다. 즉 ’교실’이라는 공간은 신세대 댄스가요를 춤과 노래로써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X세대 가수들의 패션 모방에 대해서는 선생님들의 복장 검열로 인해 금지된 공간이었다. X세대 가수들의 화려한 패션 스타일은 10대 초반이었던 나와 내 또래 친구들에게는 한없이 부러웠던 동경의 대상이었다. 신세대 댄스가요에 빠져 살았던 이유 중에 하나도 신세대 댄스가요를 통해 X세대의 최신 유행 패션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X세대 여성가 수들의 의상, 화장, 헤어스타일은 아까도 언급했듯이 학교 복장 규정에서는 검열과 단속의 대상이었다. 이에 대한 나름의 대안으로 나와 친구들은 주말이나 방학에 함께 모여 일명 “X세대 언니놀이”를 하곤했다. 엄마 화장대 서랍에 있는 파우더, 파운데이션, 아이섀도우, 립스틱 같은 화장품들을 죄다 꺼낸 뒤 친구들과 서로 화장을 해주며, X세대 가수들이 주로 했던 화장 스타일을 모방해보기도 했다. 눈에는 보라색 계열의 아이섀도우를 바르고, 입술에 진한 와인색 립스틱을 바르면서 우리는 X세대 언니가 된 기분을 느끼며 마냥 즐거워했다. 머리 스타일 역시, 염색이 학교에서 허용되지 않았던 관계로 우리는 화장품 가게에서 컬러 헤어 스프레이 혹은 컬러 헤어 무스를 구입하여 머리에 발라보기도 하였다. 의상이나 액세서리는 부모님의 허용 하에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에 들려서 당시 유행했던 크롭티와 통 넓은 바지를 구입하여 친구들과 집에서 함께 입어보면서 X세대 가수들의 패션을 따라했다.
자 이제 X세대 가수 언니들의 패션을 나름 따라했으니, 음악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면서 즐기는 일만 남았다. 한편, 1990년대 초중반은 그동안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댄스 음악 장르들이 도입되었던 시기였다. 유로댄스, 하우스, 레이브, 레게, 힙합, 뉴잭스윙 등. 내가 살던 곳에서 가까웠던 도곡동 은광여고 앞 작은 레코드 가게는 1990년대 신세대 댄스가요들을 컴필레이션한 불법 복제 음반 판매의 성지로 유명했고, 나 역시 은광여고 앞 레코드 가게를 자주 들려 불법복제 카세트 테입을 구입하곤 했다. 우리는 힙한 X세대 가수 언니들의 패션을 따라한 뒤, (불법 복제) 신세대 댄스가요 모음 테이프를 틀고 음악에 맞춰 함께 열정적으 로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불법 복제 테이프에는 1995년 가요계를 강타했던 다양한 곡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수록된 노래로는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R.ef의 <고요속의 외침>, 룰라의 <날개잃은 천사>, 박미경의 <이유같지 않은 이유>, <이브의 경고>, 박진영의 <날 떠나지 마>, 노이즈 <상상속의 너> 등이었다. 우리는 신세대 댄스가요에 대한 팬덤을 “X세대 언니놀이”를 통해 실천하였고, 그렇게 1995년의 추억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남아있다.
4. 사례연구 분석
신세대 댄스가요와 관련된 필자의 음악하기 (musicking) 경험은 다음과 같은 특성들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능동적, 자생적, 실천적인 음악 활동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음악활동 자체가 적극적인 소통과 결속력의 수단이 되었다. 즉, 음악 활동 안에서의 청중과 관객이라는 위계질서 없 이 누구나 음악 활동의 참여자가 될 수 있었으며, 음악적 훈련의 여부와 상관없이 음악 활동을 통해 또래들 간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경험할 수 있었다. 또한 필자의 음악하기는 음악을 단순히 감상하고 수용하는 입장을 뛰어넘어 음악을 새롭게 재해석하고 창작하는 생산자의 역할을 구현하였다.
둘째, 음악 활동 및 음악 장르의 층위 확장이다. 신세대 댄스 가요를 접하기 이전에 필자가 경험했던 음악 활동은 주로 피아노 학원에서 주최하는 음악회에 대표 연주자로 참여한다든지, 신문사에서 주최했던 피아노 콩쿨에 참여했던 것이 전부였다. 즉, 연주자와 청중 간의 경계가 분명하며, 연주자의 훌륭한 음악적 기량을 요구하는 그러한 음악 활동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신세대 댄스가요를 접하면서 필자는 다양한 댄스 음악 장르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으며, 음악 편곡, 녹음, 편집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의 경험을 확장시킬 수 있었고, 또래 친구들과 음악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다. 즉, 개인적 음악 활동에서 공동체적 음악 활동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셋째, 신세대 댄스가요와 관련된 필자의 음악하기 경험은 음악 활동을 기보된 ‘음악 작품’과 ‘악보’라는 틀에서 벗어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음악을 재구성해나가는 과정에 의의를 두었다. 악보에 기보된 대로 정확하게 연주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또래 친구들과의 끊임없는 소통의 산물이기도한 즉흥 연주 (improvisation)를 통해 다양한 음악 장르를 구현하는 음악 활동 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편 신세대 댄스가요와 관련된 팬덤 (fandom)으로서의 필자의 경험에 대해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논할 수 있다.
첫째, 신세대 댄스가요의 유행과 관련된 팬덤 문화는 필자를 포함한 10대들의 패션과 소비 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신세대 댄스 가요의 주체였던 X세대들의 패션 문화를 모방하고자 하는 심리에서 비롯된 의류, 화장품, 액세서리 등의 소비가 10대들 사이에서 활성화되었다. 패션용품 뿐만 아니라 신세대 댄스가요 컴필레이션 음반인 불법 복제 테이프의 소비 역시 급증하였다. 즉, 필자는 신세대 댄스가요를 통해 능동적인 소비의 주체이자 문화적 실천성을 경험하였다고 볼 수 있다.
둘째, 1995년의 신세대 댄스가요의 팬덤 문화는 어느 특정한 스타에 대해 일방적으로 과도하게 열정을 쏟았다기 보다는 다양한 스타들을 동시에 좋아하는 다층적인 성격을 보여주었 다. 이는 일방적으로 특정 스타에 주목하여 대규모의 팬덤을 구축했던 1990년대 중후반의 1세대 아이돌 팬덤의 양상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라고 볼 수 있으며, 오히려 다층적인 층위의 팬덤이 특징적이었던 2000년대 후반의 2세대 아이돌 팬덤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신세대 댄스가요의 팬덤 문화는 일종의 하위문화 (subculture)로서의 성격을 보여주었 다. 하위문화란 한 사회나 집단 내부에서 독자적 특질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소집단의 문화 를 의미한다. 신세대 댄스가요의 유행은 10대들에게 신세대 댄스가요의 팬이라는 공동의 경험과 X세대들의 파격적인 패션이라는 관심사를 기반으로 하는 하위문화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5. 나가며
이 글은 1995년 신세대 댄스가요에 대해 음악하기(musicking)와 팬덤 (fandom)을 이론적 바탕으로 하여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서술하고 이에 대해 고찰하였다. 1990년대 신세대 댄스 가요의 열렬한 팬이었던 한 사람으로서 신세대 댄스가요와 관련된 나의 이야기를 서술해보고 싶었던 것이 이 글을 쓰게된 중요한 동기였다. 자기민속지학 방법으로 접근한 이 글은 필자의 기억과 경험을 재구성하여 기술하였지만, 1990년대의 신세대 댄스가요의 사회문화적 의의에 대해 심도있고 객관적으로 논의하는 데 몇가지 한계점이 있었다.
첫째, 필자 개인의 경험이 타인과의 공유, 이해,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 보다 심도있게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자기민속지학은 자신을 연구대상으 로 삼아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자기 이야기를 서술한다 는 것은 자칫하면 연구의 객관성이 결여될 수 있다는 위험성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신세대 댄스가요와 관련된 다른 이들의 경험을 비교분석 해봄과 동시에 신세대 댄스가요를 주제로 다룬 다양한 학술 논문과 잡지 같은 자료의 검토를 통해 연구의 객관성을 보완해 나갈 필요가 있다.
둘째, 이 글은 1995년의 신세대 댄스가요에 한정지어 논의했기 때문에 신세대 댄스 가요의 사회문화적 현상이 시기적으로 어떻게 변화, 발전, 그리고 퇴보하였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대중문화의 특성상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신세대 댄스가요의 사회문화적 현상을 시기적으로 세분화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이 글은 1995년의 필자의 경험을 기반으로 서술했기 때문에 2025년 현재의 관점으로 보는 신세대 댄스가요에 대해 고찰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연구의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1990년대의 신세대 댄스가요가 그당시 10대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유추해볼 수 있는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신세대 댄스 가요는 10대들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성격의 또래 문화 형성 및 소비 주체로서 자리잡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즉, 신세대 댄스 가요의 유행은 10대들이 또래 집단 안에서 심리적 결속력과 유대감을 경험하게 하였고, 기성 세대와 차별화되는 독자적인 하위문 화를 만들어 가는 데 기여하였다. 또한 1990년대 신세대 댄스가요는 10대들에게 있어서 다양 한 층위의 문화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신세대 댄스가요는 10대들의 창의적인 활동에 중요 한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으며, X세대의 문화를 동경하고 따라하고자 하는 일종의 모방심리를 부여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학교라는 제도권 공간 안에서 일종의 ‘제한된 문화’이기도 하였다. 요컨대 1990년대 신세대 댄스가요는 10대들에게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문화’, ‘모방 문화’, ‘규제되고 금지된 문화’로서의 역할을 구현하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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