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잘못이 아닌, 그의 문제일 뿐
유명 배우 L 씨가 또 잠수 이별을 했다는 스캔들이 터졌다. 그 기사를 보자 가슴 한편에 묻어둔 전 남자 친구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날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들은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걸까?
어느 날, 그는 말도 없이 잠수를 탔다. 아무리 전화를 하고 문자를 해도 답이 없었다. 아무런 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누군가를 미치게 만드는 포인트는 사람마다 다르다. 보통 어린 시절의 상처와 맞물려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지점이 어디인지를 보면 그 사람의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나에게는 무반응이 바로 그 지점이었다.
내 부모는 반응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말을 걸어도 답이 없었다. 나는 그들의 반응이 고팠다.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도, 심부름을 아무리 잘해도 똑같았다. 결국 나는 화를 냈다. 그러자 아주 격한 반응이 돌아왔다. 그 후, 나는 아주 오랫동안 입을 다물었다.
그는 내 입을 다시 열게 해 준 사람이었다. 그의 시선이 내게 와서 닿을 때면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며칠이나 방 안에 누워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어느 순간 내 방은 거대한 화형대로 변했다. 산 채로 불에 타는 것처럼 고통에 몸부림쳤다. 살이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닷새 만에 5kg이 빠졌다.
일주일 만에 그에게 전화가 왔다. 화면에 뜬 그의 번호를 보고는 말없이 폰을 뒤집어놓았다. 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고통이 너무 크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법이다.
몇 년 뒤, 친구들과 모임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늘 그렇듯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반갑게 말을 걸었다. 가슴에 서늘한 것이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지만 태연한 척했다.
술기운을 빌어서야 그때 일에 대해 물어볼 수 있었다. 심각한 분위기를 조성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다 잊어버린 척, 가볍게 물었다. 그는 힘든 일이 있어서 연락을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게 다였다. 무슨 일이었는지, 왜 그랬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얼마 후, 그는 내게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나를 바라봐주는 게 좋았다. 그와 함께 있고 싶었다. 부드러운 그의 손길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또다시 그 불구덩이 속으로 짚을 지고 뛰어들 수는 없었다. 화상 입은 아이가 모닥불을 두려워하듯 그의 곁으로 건너가지 못했다. 그의 간절한 시선을 끝내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를 미워한 건 아니다. 시간이 지나니 원망도 희미해졌다. 단지 이해할 수가 없을 뿐이다. 대체 그는 왜 그랬던 걸까?
잠수이별의 이유에 대해 한 전문가는 '애착'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회피형 애착 유형'인 사람들이 주로 잠수이별을 택한다. 그들은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는 걸 싫어한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그 상황을 회피하고 싶어 한다. 불편한 상황에 직면하기보다는 상황 자체에서 도망가는 것을 선택한다. 그런 성향이 연인과의 관계에서 발현되면 '잠수이별'이란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상대는 갑작스런 이별이라 생각하겠지만
이들은 괴로운 날들을 참으며
속으로 카운팅을 세고 있었을지 모른다.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저 그는 그런 사람이었던 거다. 어쩌다 보니 그런 사람을 만났고,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뿐이다. 그 사실을 진작 이해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럼 지금보다 조금 덜 서글프지 않았을까?